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과학
산업 기계에서 애플 패밀리까지남영 / 한양대 교육전담교수
전민지 편집위원  |  amber.j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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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호]
승인 2011.03.02  16: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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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영향력이 확산되면서 문명의 전면에 등장했다. 산업혁명은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했다. 산업화 이전 한 가정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동일 직업군에서 함께 일했고 거의가 농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도시 임금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자 대부분의 역사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인류의 생활리듬은 바뀌게 된다.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가장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임금을 받아 ‘가정으로 격리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보편적인 상황이 됐다. 농민들은 계절과 날씨의 통제를 받았지만 노동자들은 시계의 통제를 받았다. 혈연을 중심으로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되던 계급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됐다. 산업노동자 계급의 증가로 도시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도시 빈민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숙련된 노동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의무교육이 실시됐다. 복잡한 공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식 규율이 사회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공장, 군대, 학교는 서로를 닮아갔다.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사회조직은 이렇게 형성됐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증기의 힘을 이용한 기술이 있었다. 이 새로운 기술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고 유럽을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유럽 문명에 압도당한 동아시아 문명은 철선에서 발사되는 고성능 대포 앞에 속절없이 몰락했다. 철도를 따라 전파되는 유럽의 힘은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문화적 자부심을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게 했으며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자기비하와 서양에 대한 숭배로 빠져들었다. 문명 대 문명의 투쟁에서 증기의 힘은 이렇게 유럽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최소한 19세기를 마감하는 시기에 기술은 그런 것이었다.

기계는 어떻게 인간과 닮게 되었나

 

19세기의 기술이 증기의 이미지로 대표된다면 20세기는 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제 인류는 기술에 더욱 열광하게 됐다. 20세기 초 대중은 토마스 에디슨 같은 발명사업가와 헨리 포드 같은 대량생산 관리자를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책들은 제왕과 군인의 영웅담에서 기술자와 기업가의 성공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화, 전깃불, 전기에너지, 라디오, 자동차, 비행기, 강철, 알루미늄, 플라스틱, 철근콘크리트 등이 새로운 단어로 추가됐다. 포드 자동차 공장은 절정에 도달한 미국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를 상징했다. 이데올로기의 대척점에 있었던 레닌조차도 자본주의가 증기기관과 함께 성장했듯이 공산주의는 전기라는 새로운 기술에 의해 발전해 나갈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전기력에 기초한 고층건물과 지하철은 도시를 3차원적으로 확장시켰다. 동시대인들이 그들의 시대를 ‘기계시대’, 그들의 사회를 ‘기계 문명’이라 부르면서 자부심을 표현했던 것을 보면, 이때까지도 기술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거대 기술시스템의 부정적인 면이 뚜렷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의 기술을 이전 시대와 구분한 것은 거대한 규모의 ‘복잡성’이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기술시스템의 통제가 기술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거대화된 도시들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회기반시설들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도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고 문제의 확산이 도시 전체의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여기에 환경오염과 핵 위기, 군산학 복합체에 대한 경고까지 이어지면서 대규모 기술시스템에 대해 점점 더 강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시스템과 정보, 지식을 독점한 엘리트들이 삶의 인간적인 면을 약화시키고 사회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길들이지 못한 기술로 인해 자신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렇게 전기시대가 잉태한 복잡성은 결국 ‘정보’에 주목하게 만들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예견됐다.

20세기 초의 ‘기계시대’라는 단어처럼, ‘정보시대’, ‘정보혁명’ 같은 단어의 등장은 20세기 후반 기술의 특성을 상징하게 됐다. 정보 기술은 세계대전에서 잉태되고 냉전에서 성장했으나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세계화라는 새로운 흐름의 상징으로 변신해갔다. 이전에는 ‘상품 생산을 위한 기계’가 기술의 주요한 이미지였다면 이제 기술의 이미지는 ‘시스템과 정보’로  변화하게 됐다. 개인이 대량생산으로 창출한 부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자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된 것이다. 결국 계급적 관리구조는 충분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으며 오늘날 시스템의 복잡성에 대응할 만큼 유연하지 못하다고 판단되어, 거대해진 기술 시스템의 통제 권한이 다양한 수준의 수많은 개인들에게 분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산업혁명 시기에 정립되고 전기 시대에 강화됐던 중앙집권적 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된 것이다. 각 조직을 모듈화해서 스스로의 문제를 알리는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이론이 나왔고 기계와 유기체 사이의 유사성도 강조됐다. 이로써 기계는 인간과 점점 더 닮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컴퓨터, 반도체, 소프트웨어의 상호작용은 디지털 정보의 확산을 촉진시켰고 트랜지스터, 집적회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이어지는 일련의 발명들이 그 속도를 가속시켰다. 1970년대 애플컴퓨터가 판매되고 제록스에서 아이콘, 마우스, 풀다운 메뉴가 창안되면서 이후 PC의 새로운 방향이 제시됐고, 미 국방부의 통신망은 이후 인터넷 네트워크의 핵심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컴퓨터의 주변요소로 간주되었던 소프트웨어가 주역으로 등단하며 빌 게이츠가 대중의 시대상징으로 떠올랐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World Wide Web이 만들어지면서 21세기 기술혁신의 토대가 이뤄졌다. 인터넷의 유행, 유선에서 무선 통신망으로의 이동, 모바일 기기의 대중화까지 이어지면서 21세기 초 10년은 스티브 잡스라는 새로운 시대상징을 선택하기에 이르고 있다.

기술과 사회형태의 공진화

이런 기술적인 변화와 밀접하게 결합된 사회 형태들도 정보혁명 기간에 진화했다. 계급화·특수화·표준화·집중화·전문지식·관료화는 전기시대의 특징이었지만, 정보시대의 특성은 탈 권위·학문간 연계·이질성·통제의 위임과 분산·성과 중시·유연성 등이었다. 미래학자들은 PC와 인터넷이 도시나 교통 중심지로부터 교외로 인구를 빠르게 이동시킬 것이며 전 세계적인 즉각적 정보 교환은 국가를 초월해서 결국 디지털화가 지방분권화와 세계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미 서울, 뉴욕, 런던, 파리, 동경 등의 대도시들은 사무용 빌딩, 패스트푸드 체인, 아파트, 심한 교통체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시스템이 서로 닮아가고 있다. 정보기술이 저렴한 운송수단과 의사소통수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현상이다. 이렇게 정보혁명의 성과들이 가시화되고 환경 친화적인 기술에 대한 강조들이 이어지면서 기술을 혐오했던 분위기는 상당히 변화했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기술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전기시대 기술혁명에 대한 열광자들이 오늘날의 정보혁명의 열광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전기가 그들의 이상을 충족시킬 것이라 과장되게 기대했었다는 점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과 200여년의 기간 동안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신기술의 등장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기술에 대한 강조는 근대와 함께 시작됐고 크게 세 번에 걸친 신기술의 물결 앞에 낙관과 비관이 뒤섞인 다양한 이미지의 변천이 있었다. 진화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히 인간과 기술은 서로를 변화시켜왔다. 인간과 기계의 상호 진화를 보며 어떤 관점에 무게를 실어 볼 수 있을까. 인류는 거대 기술 시스템의 노예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편리한 도구로서의 기술이 인류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것인가. 혹은 기계와 유기체의 구분 자체가 하나의 유형화된 틀일 뿐일까. 우리는 끝없이 예측을 쏟아내지만 우리의 선택과 기술의 예측 못한 피드백이 융합되며 미래는 여전히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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