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희 / 신문방송학과 박사수료

남성과 여성의 구분 혹은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생물학적 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동의하든 후자에 동의하든 다수의 사람들은 남/여의 이분법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는 남성과 여성만이 존재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모든 종에서 다양성이 존재하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남성과 여성은 사회적 범주다.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동어반복적 범주화 속에서 차이는 재생산된다. 우리는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범주를 구분하는 준거가 된다는 방식으로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 구분을 사회적 구분으로 이해하는 것은 본질주의의 오류라고 지적한다. 

생물학자가 생물을 수컷과 암컷으로 구분할 때 생식세포의 크기에 따라 개체를 나누는 것 외에는 다른 객관적인 방법이 없는데, 이 방법에 기인해 남성과 여성을 정의하려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적 범주는 사회적 범주일 뿐, 생물학적 범주와 일치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강하고 힘있는 남성, 부드럽고 연약한 여성이라는 통념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우리사회에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인 모두가 존재한다. 우리는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모든 종에 있어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주어진 어떤 범주에 포함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이 범주는 너무나도 가변적인 것이다. ‘진화’ 혹은 ‘종의 선택’이라는 다윈의 진화론은 부적절하다. 저자에 따르자면, 다윈이 주장하는 선택은 특정한 우성 유전자만의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들의 상호작용 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사회는 차이와 다양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사회인가. 언론에서는 한국사회를 다문화 사회로 규정한다. 이주여성 또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책보고서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최근 종영된 한 드라마에서는 동성애자의 가족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시각은 다양성의 단순한 인정 내지는 마지못한 수용이다. 한편으로 그들을 보편적인 사회기준에 포섭하려는 기획도 엿보이는데 이는 못내 불편하다. 다양성은 포섭과 흡수가 아니라 공생 또는 공존하는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현상이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과학분야에서 다양성은 중요한 화두다. 여기에는 성적 다양성 외에 인종간의 다양성도 포함되며, 거의 모든 단어에 다양성은 적합하고 올바르게 포함된다. 이 다양성의 경계는 차이다. 그러나 차이라는 개념은 동일성 혹은 보편성이라는 개념과 함께 자리하지 않으면 자신의 내용을 나타낼 수 없다. 언어는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고 다른 항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다양성의 개념을 여러 종의 관계 속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와 같이 젠더와 섹슈얼리티로 시작하지만 문화 전반으로 다양성 개념을 확대하여, 다양성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분야는 생태학과 진화론, 생물학, 유전공학, 사회과학 등으로 방대하다. 각 분야는 모든 생물체, 동물, 인간이라는 종의 다양성에 대한 설명이다. 1부는 동물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설명이고 2부는 인간의 섹슈얼리티, 3부는 문화의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방대한 분야와 다양한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소위 논문이나 이론서라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기를 시도한다. 다양성을 주장하는 만큼 독자 또한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다양한 독자들 중 한 사람이며, 독자일반이라는 보편적인 독자이기도 하다.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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