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학술
코드화된 세계의 ‘인간되기’실현김성재 /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천선영 편집위원  |  gmlssjrnf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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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승인 2010.11.11  2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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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철학자 플루서는 상징체계인 코드를 토대로 인류문화사와 철학을 기술한다. 인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크게 세 가지 코드를 사용해왔다. 선사시대의 그림(전통적인 그림), 역사시대의 텍스트, 마지막으로 탈역사(탈문자)시대의 테크노 코드인 기술적 형상(새로운 그림)이 그것이다. 그가 던진 현상학적 질문은 ‘위의 두 가지 서로 다른 그림이 텍스트와 어떤 상관관계 속에서 창조되고 해독될 수 있는가’였다. 미디어는 그 내부에서 코드가 작동하는 구조다. 예컨대 책이라는 미디어 내부에서는 텍스트 코드가 작동한다.

 인류의 세 가지 질적 비약

인류의 첫 번째 질적 비약이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그림은 선사시대에 탄생한 코드로서 주체인 인간이 객체를 관조하면서 생긴 주변세계와의 틈을 메우기 위해 창조됐다. 그림은 움직이는 물체의 4차원적 관계들을 상상의 도움을 받아 2차원적 관계들로 축소함으로써 만들어진 상징들로 덮인 평면이다. 상상은 4차원적 시공간의 관계들을 2차원적 관계들로 축소하는 능력이자, 그러한 2차원적 축소를 4차원으로 환원하는(그림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림은 정보의 동시화이고, 그림의 해독은 정보의 통시화다.

선사시대의 그림에 표현된 사물들 간의 관계는 신과 영혼의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죽지 않는, 곧 시간이 순환하는 마술적 의식에 의해 규정된다. 시간이 순환하는 그림 속의 요소들은 정당하고 숭고하며 올바른 자리를 차지하면서 요소들 간의 불변성을 견지한다. 그러나 인생은 움직임을 의미하고, 이 움직임은 올바른 장소의 이탈이자 규칙위반이며 보복을 동반한다. 보복에 노출된 인생은 두렵기 때문에 그림은 기도의 대상이 되면서 우상숭배라고 불리는 집단광기(환상)에 사로잡힌다. 선형문서(텍스트)의 발명은 그림의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힌 지옥과 같은 분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시도된 구제로까지 느껴진다.

인간은 위협적인 환상의 광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서면서 두 번째 질적 비약, 그림으로부터 텍스트로의 비약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그림이 신화와 마술의 의미를 담았다면, 텍스트는 이성에 기초한 계몽과 역사(이야기)를 강조함으로써 발전의 이데올로기를 촉진시킨다. 그러나 15세기 구텐베르크의 활자발명 이후 19세기 말까지 절정에 이르렀던 선형코드의 역동성은 이성 중심적 과학언어 및 추상적 개념들의 범람을 초래함으로써 텍스트를 과거의 그림처럼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이는 인간이 침투할 수 없는 책 속에 갇힌 광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커뮤니케이션의 장애 요인이다. 텍스트의 불투명성은 역사적 의식의 몰락을 예고하는 징후이자 텍스트에서 벗어난 기술적 형상이라는 새로운 그림 매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1900년 이후 탈문자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세 번째 질적 비약이 시작된다. 인간은 선형코드가 형성시킨 ‘발전’이라는 역사의식에서 무의미함을 느끼며, 텍스트의 세계로부터 뛰쳐나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기술적 형상’이라는 새로운 평면코드(그림)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그 결과 선형코드는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등의 기구를 이용해 다시 모아져야 할 0차원적 점의 요소들로 붕괴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그림은 장면의 모사가 아니라 텍스트에서 나온 프로그램이다. 역사(이야기)가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1차원적 선형코드에서 붕괴된 점(비트)들을 계산을 통해 집합시키는 컴퓨터화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새로운 평면코드인 기술적 형상(모니터 상의 텍스트 자체도 비트의 조합인 새로운 그림)이 오늘날 지배적인 코드의 위상을 차지한다.

텔레매틱 사회의 신혁명가들

편 개별적이고 고독한 미디어 이용자는 인간의 두뇌를 훨씬 초월하는 신속성과 저장 가능성으로 무장한 컴퓨터를 통제할 수 없지만 전체로서의 사회는 이 기구를 통제할 수 있다. 통제는 ‘조용한 신혁명가들’의 참여가 있어야 가능하다. 사회는 전체로서 기구를 프로그램화하고, 원하는 상황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 사회는 대중매체의 일방적인 송신자 회로를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 회로로 재구축해야 하며, 이는 텔레매틱이라는 기술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텔레매틱은 일반적이고 전지구적인 담론과 대화를 허용한다.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이 기술은 모든 사람들의 동참이 가능한 민주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송신자 회로도의 재구축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미래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미지 창조자, 영화 제작자, 비디오 제작자, 컴퓨터 사용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텔레매틱 사회에서의 조용한 혁명가들은 자신을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오락에 내맡기지 않고 대화를 즐긴다.

오늘날 기술적 형상은 네티즌들이 정보를 창조하고 서로 대화를 하는 새로운 평면코드로 작동하면서, 과거 상호교신을 위해 선형 텍스트를 가지고 유희하던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 다. 특히 텔레매틱 사회에서 테크노 코드를 이용한 대화는 선형코드를 이용한 역사적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텔레매틱 사회는 아직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을 대화적으로 그림 속에 옮겨 놓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과 게임을 즐기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유희 속에서 항상 새로운 정보가 창조되고 새로운 도전을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용한 혁명가들의 참여에 의한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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