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휘진 편집위원

 요즘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진보진영 내에서 논쟁이 한창이다. 더 명확히 말하면 비판해야 하는가, 함구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가 ‘북한의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고 발언한 뒤 논쟁은 더욱 가열됐다. 민노당에게는 ‘정부도 아닌 민노당이 남북관계의 틀어짐까지 염려할 것 없다’는 말부터 사고의 수준이 유아적이라는 원색적 비난까지 온갖 비난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묵비권 행사가 곧 죄의 시인이 아닌 것처럼 침묵하는 것이 (암묵적인 합의로 이해될 여지는 갖지만) 인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입장을 밝히지 못했던 민노당에게 ‘세습을 찬성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비판하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논리의 비약이고 유아적인 사고는 아닐까.
물론 민노당이 스스로 이번 북한 세습에 관해 발언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북한을 무조건 포용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일갈에 해결할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중권의 주장처럼 말해져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진보다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민노당의 기우가 단지 그들만의 망상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북한은 한나라당이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발언을 할 때이다. 종종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을 가해왔다. 게다가 정부만이 국제관계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너희가 아무 말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폭력적인 “사상검증”과 다름 아니다. 이 사상검증의 폭력 이후에 어떤 폭력이 초래될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현재 시급한 일이 민노당 사상검증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는 지금 세습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김정은과 그 주변이 행할 정치는 어떠할 것인가, 그 정치로 인해 북한 국민들이 처한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 물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북한의 세습에 찬성한다 혹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한 국민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만인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조건과 양태, 나아가 그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진보의 과제이기에 해야 할 일이다. 북한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삼성기흥공장의 노동자, 이란의 전쟁고아, 티벳의 망명인에 대해서도 진보는 항상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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