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규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유협이 쓴 <문심조룡(文心雕龍)>은 5세기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동양 문예학을 대표하는 가장 긴 문예이론서이다. 제목에 따르면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나 마음의 작용(文心)을 글자, 즉 문장으로 정교하게 조각(雕龍)하는 일이다. 동시에 용의 몸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처럼 그 문장이 필히 아름다워야 할 것을 우선으로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언어’라는 도구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일. 바로 이것이 제목이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은유이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결국 이 책의 저자인 유협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마음’이 문학을 비롯한 인류의 문화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은 모든 현상을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감수성이다. 그는 “천지자연의 아름다운 형상이나 소리도 사람의 감각기관인 마음으로 감상될 때에만 미적인 가치가 생겨난다”고 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간의 창조 능력까지도 동반하게 된다.

   여기서의 창조(또는 창작행위)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능력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능력의 원동력은 감정의 자연스런 흐름에서부터 온다. 그 흐름을 원활히 만들어 그것을 문자로 최대한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감정의 흐름을 형상화하는 구체적인 창조 행위 자체를 우선으로 두어서인지 이 책은 다른 문예이론서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지닌다. 창작의 아름다움에 목적을 두다 보니, 기존의 사상이론보다는 문예미학론에 더 가깝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중심으로 두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글을 쓸 때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을 인간의 감정을 통해 정교하면서도 아름답게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문장을 다루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왜 이렇게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위해 눈과 손을 혹사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것은 의식적인 자아의 표현이다. 내가 느꼈던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기에, 또 그것을 좀 더 아름답게 지속하고 싶기에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유협이 말한 것처럼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이 책이 오랜 시간이 지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월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전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글을 쓰거나 읽음에 있어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 역설적인 비유로 말하자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언어)로 대신하는 일이 문자 예술이 추구하는 핵심이다. 이것이 한 줄의 글자나 문장을 위해 눈과 손을 혹사하는 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소망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천지만물의 정화며 천지의 핵심이다. 마음에 느낌이 생기면 언어로 확립되고 언어가 확립되면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이다.”(爲五行之秀, 實天地之心. 心生而言立, 言立而文名, 自然之道也.)-<문심조룡(文心雕龍)>, 제 1장<원도(原道)>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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