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미 /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최근 몇 년 간 여러 사건들을 통최근 몇 년 간 여러 사건들을 통해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분기충천한 대중의 마음을 달래려는 듯 정부는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바빴고, 현재는 전자발찌제도, 가해자신상공개제도, 성충동 약물치료 등 다양한 처벌방안이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대기 중이다. 성폭력 가해자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요구해온 일이지만, 이러한 흐름이 반갑지만은 않다.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고민과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화학적 거세’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다

  이 중 최근 통과된 '아동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이하 약물치료)의 경우, 2008년 발의 이후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근간의 아동성폭력사건들을 계기로 6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시행을 1년 앞둔 현재, 실효성과 타당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른바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약물치료는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서 성폭력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19세 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을 통해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는 치료방법이다. 약물을 신체에 직접 투여하므로 효과는 즉각적일 수 있으나 이는 일정기간 동안만 유지되기 때문에 치료감호 혹은 심리치료와의 병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시적이고 보조적인 치료수단에 불과한 약물치료가 성폭력 재범의 효과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해외의 경우 주로 미국과 캐나다, 중동부 유럽 등지에서 약물치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국가별 적용 대상과 방법, 실효성 여부에 대한 해석 또한 다양하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성범죄 재범률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으나 호주에서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그 효과를 검증한 사례가 없다며 도입하지 않았다. 1998년 미국에서는 20년 전 성추행 유죄판결 후 약물치료를 받은 가해자가 치료 중단 후 5세 여아를 강간한 사건이 발생, ‘평생 화학적 거세를 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없고, 장기간 실시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하는 갈등 상황에 봉착해 있다.

  법안 도입과 실행에 있어서는 타당성을 담보하기 위한 근거 데이터와 철저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현재 실효성과 부작용, 가해자의 인권침해, 기존 제도 활용 및 검증 등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시행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성폭력은 힘의 문제이자 폭력의 문제이다. 흔히 ‘욕정’이라고 표현되는 성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신이상자나 소아성애자, 인면수심의 파렴치범만이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은 폭력에 무딘 우리 사회와,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며 성차별적인 문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성폭력을 단순히 성 문제나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차원으로 치부하는 한, 성폭력 사건은 일상의 공포만을 남긴 채 ‘운 나쁘게 당하는 끔찍한 사건’ 정도로만 인식될 것이다.

  성폭력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임과 가해자 역시 우리 사회에서 살아온 일원임을 인정한다면 치료와 격리보다는 교정·교화교육을 통한 성 인식·인권 의식 개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재소자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따라서 시설 내 성폭력 예방교육 및 인권교육 확대를 통해 인권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되 전문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 적절한 예산 편성 등을 실시하여 실질적인 교정·교화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처벌강화 아닌, 처벌 가능성 확대가 우선

현재 성폭력 사건의 고소율은 7% 남짓이며, 고소 건수 중 기소율은 40%, 실형판결률은 20%에 불과하다. 고소된 성폭력 사건 1천건 중 처벌되는 사건은 고작 5.7건인 셈이다. 이 중 아동성폭력 사건, 나아가 약물치료 대상자에 해당하는 사건은 고작해야 한두 건일 것이다.

  정부는 한두 명의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대책에 매달리기 보다는 법망을 빠져나가는 많은 사건의 해결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머지 93%의 성폭력 사건이 신고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낮은 고소율은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통념에 기인한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말이 더 설득력 있게 여겨지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진심으로 성폭력 범죄를 염려한다면 눈앞의 성과에만 연연하지 말고,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은 드러나지 않은 93%의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999명의 가해자에 대한 변화의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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