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예 / 충남대 초빙교수

일반적으로 진화는 서로 다른 종들의 경쟁이고 따라서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그 개체 수를 증가시키고 실패한 종은 멸종된다는 것이 자연의 질서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생존에 필요한 것은 비단 경쟁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경쟁이 아닌 ‘이타적 행위’들을 목격한다. 종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진화라면 구성원들 간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유전자의 차원에서도 이타성이 존재하며 이 이타적 본성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유전자의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의 문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생물학적 논쟁보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는 과연  유전자에 이타적 본성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이 이타적 본성은 유전되는가, 이타적 본성이 진화와 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유전자와 윤리

다윈은 기본적으로 개체 중심의 자연선택설을 주장하지만 집단 간의 경쟁에 있어서는 이기적 개체가 많은 집단보다는 이타적 개체가 많은 집단이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본다. 하지만 다윈은 생물에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시대 다윈의 진화론은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유전자와 자연선택 사이의 관련성이 모색되고, 1930년에 이르러 유전학에 수학이 가미되면서 자연선택에 관한 원리가 종합된다. 이로써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이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도킨스, 윌리엄스, 스미스 등은 진화를 다음 세대에 가능한 한 더 많은 유전정보를 남기려는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투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로렌츠는 같은 종끼리 싸울 때 서로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지 않거나 죽이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종의 살해 억제 메커니즘이 작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며, 이를 통해 종의 진화에 이기성이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굴드와 엘드리지, 마굴리스는 생물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생물들 사이의 협조와 공생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들은 개체들 사이의 상호부조가 생물 진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협력과 공생 관계는 여러 범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시적 세계>에서 마굴리스는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의 진화 과정을 통해 공생관계를 처음으로 밝혀 냈다. 기생생물과 숙주 사이의 관계 역시 상이한 개체들 사이의 ‘공진화’라고 할 수 있다.

이타성의 발현

대표적으로 주장되는 이타성에는 자손 탄생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본능인 ‘혈연 이타성’과 혈연관계를 떠나서 자신에게 이익을 주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호혜적 이타성’, 그리고 같은 종에 속하는 생물로서 무리생활을 하는 종들에서 나타나는 ‘집단 이타성’이 있다.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연을 돕고자 하는 성향, 이것이 바로 혈연 이타성의 기초를 이룬다. 그러나 그 관계가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간의 관계처럼 가까워야 할 필요는 없다. 혈연관계를 떠나서 자신에게 이익을 주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호혜적 이타성은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에 기초한다. 이는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도와서 생존 확률이나 이익을 높일 수 있는 경우에 나타난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진 개체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한다. 집단 이타성의 예는 서로의 털을 다듬어 줌으로써 기생충을 제거하는 원숭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들보다 건강하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집단 이타성은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들의 집단으로 끼어든 침입자를 공격하며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사회성 동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고전적 의미의 이타적 행위란 종의 보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동종의 개체들이 종의 생존을 위하여 서로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서로의 이기적 욕망을 자제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떻게 사회적 윤리체계로 바뀌었는지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가 경쟁에 의한 자연선택만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선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전개되는 진화론은 경쟁이라는 요소만이 아니라 협력과 공생이라는 요소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때 인간의 이성적 사고 능력은 이타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훌륭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타성은 유전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될 뿐만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도 다른 개체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타성은 종족보존뿐만 아니라 결국 개체보존에도 효과적인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화의 과정을 볼 때, 경쟁과 갈등보다는 협력과 공생으로 표현되는 이타성이 인간의 진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사실이 인간 윤리의 당위성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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