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6.11 목 16:51
기획사회
<경계도시2>, 한국 사회의 오늘에 대해 질문하다홍형숙 / 다큐멘터리 감독,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박휘진 편집위원  |  whyj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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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승인 2010.05.04  19: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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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과 2010년, 진정한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필자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는 대신 객석을 향해 질문을 되돌린다. “<경계도시2> 편집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결과가 바로 이 영화다. 7년 전 그때로부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그리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내가 여러분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답은 여러분의 몫이다.”

 

   

2002년 다큐멘터리 <경계도시>를 내고 본격적인 상영을 기획할 무렵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정치적인 이유로 35년 동안 입국이 금지되었던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드디어 고국 땅을 밟게 될 것이며, 놀랍게도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였다. 국가정보원은 곧바로 송 교수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 고국 땅을 밟은 반백의 철학자는 친구들이 건넨 꽃다발을 들고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설렘과 기대가 채 가시기도 전에 송 교수는 “존경받는 민주인사”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했다. 입국부터 구속까지 정확히 한 달 동안 한국 사회는 송 교수를 두고 말 그대로 굿판을 벌였다. 이후 송 교수 사건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까지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진행되었으나, 놀랍게도 한국 사회의 기억은 떠들썩하던 초기 한 달로 끝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사건으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에서 송 교수 개인이나 사건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상처는 깊고 선명한데, 사건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 7년 간의 실종에 대해 누군가는 “침묵과 망각의 카르텔”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무엇이라 부르든 문제의 핵심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 그 자체일 것이다. 이토록 완전한 침묵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경계도시2>, 2010. 스틸 컷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말 걸기

최근 독립영화의 약진은 눈부시다. 관객들은 새로운 영화의 맛을 음미하며, 낯설지만 신선한 영화에 시간과 돈을 지불하고, 끊임없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올 초 배급사로부터 <경계도시2>를 개봉하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만 해도 필자에게 ‘극장’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극장은 산업적 메커니즘에 의해 주류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채널이었고, 극장의 현실은 개봉관이 없어 대기하는 작품이 넘쳐나며, 개봉을 하더라도 한두 편만 살아남는, 말 그대로 냉정한 자본에 의한 문화전쟁터였다. 그러니 필자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도구조차 갖추지 않은 채, 준비되지 않은 전투의 현장에 들어서게 된 셈이다.

2010년 들어 독립영화전용관이나 시민영상미디어센터, 시네마데크전용관 등 오랜 시간 독립영화인들이 고심하고 준비하며 만들어왔던 문화공간들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이 복잡한 상황과 우려 속에서도 운 좋게 본 영화에 대한 지지가 이어졌고, 3월 중순 <경계도시2>는 개봉했다. 그리고 4월 말 현재 극장 관객수 8천 명, 공동체 상영(극장 이외 상영) 2천 명을 합해서 1만 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한 달 동안 개봉 전부터 귀가 닳게 들어온 “독립영화 만 명 고지 넘기 힘들다”는 말을 실감나게 체험했다. 물론 전국 10여 개 안팎의 극장에서만 개봉했고, 전 회차 상영을 하는 극장은 단 한 곳이었던 현실과, 독립영화의 눈부신 약진의 지표로 항상 거론되는 몇몇 영화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이 백 단위나 천 단위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했을 때 <경계도시2>는 매우 선방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렇게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독립영화전문배급사인 시네마달과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지원센터, 서울독립영화제와 수많은 독립영화인들이 경험과 지혜를 모은 덕분이다. 또한 무엇보다 영화에 아낌없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준 관객들의 힘이 가져온 결과다. 5월부터는 관객과 영화가 서로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적극적인 상영 형태인 ‘공동체 상영’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 그 성과와 의미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모 기자의 말처럼 “영화가 이 정도의 호의와 전폭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계도시2>의 박스오피스가 보여주는 현실적 지표는 냉정하다. 이 현실적 지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남은 숙제다. 독립영화의 목소리와 색채가 다양해지고, 그 자리가 더 이상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는 아직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생각을 나눌 통로가 충분치 않다. 하지만 다른 한편 분명한 것은 해법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인들이 있고, 영화를 찾는 적극적 관객이 있는 한 새로운 통로 역시 개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창을 내기

포털사이트에서 <경계도시2>에 대한 영화 평점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관객들은 1점부터 10점까지 영화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데, <경계도시2>는 1점 아니면 10점이고 중간 점수는 매우 드물다.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서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필자는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면서, 2003년 당시 송두율 교수가 한국 사회의 지표 생물-한 지역에 해당 생물이 살 수 있는지 오염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생물-이었다면, 2010년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표생물은 <경계도시2>가 아닐까 내심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제작진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관객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러왔다가 거울을 보고 간다” 등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평부터, 만든 이를 긴장시키는 날카로운 질문까지 관객과의 대화는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블로그나 카페를 비롯해서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통로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덕분에 <경계도시2>는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리뷰를 가진 영화가 되기도 했다. 과연 주류 영화들 중 어떤 영화가 동시대
의 관객들과 이런 내용을 공유하며 품격의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독립영화는 자신만의 사유와 감각으로 가다듬고, 새로운 소통의 창을 내기 위해 무한 질주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의 작업에서 건져 올린 게 있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그 무엇을, 당대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중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 다큐멘터리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발견과 질문’이라는 화두는 필자 개인의 숙제일 뿐만 아니라, 시대와 자신을 연관시키며 새로운 창을 열어야 하는 독립영화의 출구와도 통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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