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길 / 사회학과 석사과정

  내게 제도권 교육은 늘 자각을 가져다주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내가 배운 건 공부를 잘 하면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었고, 교사는 언제나 어린 학생들의 학습 수준에 따라 그들의 애정을 구분했다. 중·고등학교 6년을 버티며 내가 깨달은 것은 좋은 대학을 가야 인간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생은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에게는 그 흔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대학은 달랐다. 교수는 학생들을 공정하게 대했고, 정의가 무엇인지 참된 지식은 무엇인지 가르쳤다. 균형감 있게 말하려고 애쓰는 게 보였지만 그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렇게 대학은 내게 개안을 경험케 해주었고, 올바른 삶이란 나 혼자만을 위한 삶이 아닌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교수는 그렇게 가르쳤다.

  대학원에서 1년을 더 공부한 뒤 입대를 했다. 동료들에게 간간히 들은 바로는, 공부 이외의 부담이 늘어났다고 했고 교수들 역시 제출해야할 서류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군복무를 1년 남짓 남겨둔 때, 두산그룹이 학교재단을 인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대 동료들은 축하한다고 했고 친척들 역시 희망과 안도의 말을 건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했다. 많은 것들이 낯설었으나 공부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하지만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공부에서 오는 고단함이야 그때와 같았지만, 동료들의 눈에서 그것과는 다른 자괴감과 열패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수들이 달라져 있었다. 틈틈이 드러내던 진보와 현장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자본이 문제라고 한다. 욕망이 얽어맨 구조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면 순순히 이 과정에 몸을 던져야 하고, 그렇지 않고 다른 마음을 품으면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진실과 진리를 말하는 건 이제 대학의 조건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모두 아무 말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말을 꺼낸다는 건 불편함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전역 후 8개월을 바라보며, 복학 후 1달을 체험하며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힘들게 땀 흘리고 살아가는 많은 분들처럼, 교수 역시 자본의 구조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시대는 현실적 조건이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자본의 시대였던 것이다.

  정의와 참된 지식은 사라졌는가. 진보와 현장은 이제 옛 말이 되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회는 여전히 대학에 그리고 교수들에게 어떤 책임감을 부여한다. 대학교수이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채근한다. 나는 대학에 와서야 인간의 존엄성을 배웠다. 그리고 교수들은 내게 ‘앙가주망’이야말로 올바른 삶을 완성할 수 있는 힘이자 무기라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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