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우 / 문화평론가

 

 

 

<크로스>는 이 시대와 잘 어울리는 책이다. 책의 제목인 ‘크로스’를 우리말로 옮기면 ‘가로지르기’에 해당된다. 학제적 혹은 통합학문적 연구는 이미 학계의 유행이 되었고, 생물학에서 비롯된 ‘통섭’ 개념은 융합과 통합 등 유사 개념들과 더불어 21세기 모든 영역에서 대표적인 사유틀로 자리 잡았다. 이미 유행이 지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저자들은 또다시 ‘크로스’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우리들의 일상을 놓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시각을 교차시켜, 거기서 확인되는 차이를 통해 사물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 이 책은 사소하면서도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때론 열광하고 때론 비판하면서 벌이는 ‘충돌과 합체의 퍼포먼스’이다.”(정재승) 이에 대해 진중권은 “디지털 생활세계의 현상학을 구축하는 첫 걸음”이라고 답하고 있다.

  이 책은 총 21개의 주제에 대해 두 저자가 각자의 시각에서 기술한 것이다. 선정된 주제는 스티브 잡스, 강호동과 유재석, 앤절리나 졸리 등 문제적 인물에서부터 9시 뉴스나 생수, 개그콘서트 등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책은 특별한 구분 없이 주제를 나열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글의 내용 또한 개인적 체험을 고백하기도 하고 전문성을 한껏 뽐내기도 한다. 공저자인 미학자 진중권과 과학자 정재승의 만남이 놀랍지 않은 것은 이미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크로스’의 실천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미학자와 과학자의 만남

  미학은 철학과 문학, 사회학, 심지어 경제학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핵심 영역이다. 이러한 진단은 그저 이것저것 조금씩 맛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를 아우름과 동시에 그것들을 관통하는 나름의 일반적 통찰을 제시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진중권은 ‘박사 학위가 없으면서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는 미학이 중요해진 시대에 비미학적이고 반미학적인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겪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양면성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의 내공을 가졌다.

  미학의 힘에 견주어 과학 역시 오늘날 가장 무서운 권력을 행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물리학은 미학과 닮아 있다. 물리학이 물질세계의 원리를 찾는 것이라면 미학은 물질세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정신과 감각의 체계를 다루는 것이다. 모든 학문의 출발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소위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미시 영역에 갇혀 더 이상 자신이 어떤 곳에 서 있는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나아가 자신이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재승의 대중적 글쓰기는 그 자체로 과학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 ‘박사’에 관한 글이 흥미로웠다. 진중권은 박사 학위가 없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의 학벌주의가 얼마나 ‘촌스러운지’(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의미로 그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수 자리 줄 테니 박사 학위를 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저 교수가 되려고 학위를 받는 것은 내 삶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 굳이 정교수 자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데 큰 불편을 못 느낀다. 학위를 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있다면, 차라리 미국에 가서 조종사 면장을 따고 곡예비행을 배우는 게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리라 믿는다. 사회가 학벌을 차별한다고 굳이 사회의 요구에 맞춰 학벌을 딸 필요가 없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적 차별을 돌파하는 ‘존재 미학의 실천’을 감행해야 한다. 이에 반해 정재승은 물리학 박사이자 정규직 교수로, 일반론적인 관점을 제시할 뿐이다. 일종의 현실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 ‘열공’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한번쯤 마지막 장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위반’을 통해 ‘크로스’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질서와 규율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군사독재의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규율적 삶의 원리가 한국사회 전반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를 위한 크로스는 규칙이나 질서를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크로스는 결국 위반을 경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항상 크로스는 새로운 실험이며 도전이다. 우리는 통섭과 융합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구호일 뿐이다. 현실은 전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기존 분과학문과 제도, 프로젝트 등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네 학문사회다. 지금은 경쟁력 강화라는 무식한 논리가 수십 년을 쌓아온 대학의 자존심을 짓밟는 시대다. 자기만 살아남기 위한 안주가 아니라 미래에 함께 살아남기 위한 전략과 전술로서 ‘크로스’가 필요한 때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발랄함과 명쾌함은 전략과 전술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무기다.

  서문에 나오는 만화영화 <아이젠버그>의 철수와 영희의 ‘크로스’처럼 이제 세계는 합체 가능한 시대가 됐다. 아니 합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다. 합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새로운 힘과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그 의미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크로스’ 이후의 합체 과정에는 이르지 못한 것만 같은 아쉬움도 남지만, 그 이후는 독자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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