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남 / 계명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필자는 위와 비슷한 제하의 글을 몇몇 언론에 유포한 적이 있다. 이야기의 결말을 관객이 결정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여성 감독인 조영호가 <영호프의 하루>(1999), <밀레니엄 살인행진곡>(2000) 등을 연달아 선보일 때였다. 분명한 한계도 있었지만, 제작사 자체에서 설립한 온라인 영화관을 통해 수십만 건의 조회 수(관객)를 기록했다. 이는 멀티미디어 매체 환경이 열어준 가능성을 그대로 살린 새로운 서사 형태의 출현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컴퓨터와 인터넷의 급격한 발달, 정보와 통신의 결합으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그 기술적 지평이 무한을 향해 확장되고 있는 멀티미디어는 어느새 우리의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한 세계를 체계적인 지식으로 저장하고 새롭게 발현할 수 있는 수단인 일상의 ‘이야기하기’나, 전문가들이 해왔던 여러 방식의 서사, 그리고 창작과 수용은 근원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멀티미디어는 불특정 다수간의 무수한 상호작용(interactive)이 가능한 매체이며, 그것은 사용자에 따라 메시지의 저작, 혹은 전파와 수용, 재구성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야기, 특히 대중적 파급력이 큰 영화 영상물 창작의 방법론과 형식뿐만 아니라 수용과 경험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급속하게 우리 삶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서사의 다양한 지평, 인터랙티브 영화

그렇다면 인터랙티브 영화는 어떻게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영상물은 몇 가지 내용적, 형식적 실험을 해왔다. 먼저 단선적인 서사 진행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어떤 서사적 갈래(선택의 순간)에서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관객이 선택을 하도록 하는 형태다. 즉 관객의 참여와 선택을 통해 다중 갈래와 다중 결말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시도로는 여러 가지의 단서와 가능성을 제시한 후 일종의 퀴즈풀이 같은 형태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다중 시점 방식을 이용해 여러 인물의 여러 이야기를 중첩하는 ‘동심원 서사 방식’도 있는데, 조영호 감독이 실험했던 작품들이 이와 같은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밖에도 미국의 글로리아나 대븐포트가 이끄는 MIT 미디어랩 산하의 ‘인터랙티브 시네마 그룹’은 영화 이야기의 시퀀스들을 여러 갈래로 설계한 다음, 네티즌들로 하여금 그 시퀀스들을 제작하여 웹에 올리도록 하고 그것을 인터랙티브 툴에 의해 볼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샌디에고 대학의 레프 마노비치는 영상 소스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 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임의로 선택된 영상들을 다중 윈도우 디스플레이 기기에 투사하는 방식을 실험했다. 한편 지난 2008년에는 양방향 텔레비전인 IPTV의 특성을 살려 제작된 새로운 형태의 인터랙티브 영화, <스토리 오브 와인>(이철하, 2008)이 발표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영화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실험들과 큰 차이가 없었으나, 질적 수준과 내용적 완성도 면에서는 종래의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지난 10월에는 게임과 인터랙티브 영화를 결합한 형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도가 있었다. 터치/아이폰의 직관적인 터치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한 <Hysteria project>라는 인터랙티브 게임이 그것이다. ‘미스터리 호러 방 탈출 액션’이라는 거창한 광고 카피가 허언이 아님을 웅변하듯 생생한 이게임은 이야기의 전개 시점이 관람자 자신, 즉 1인칭 상태에서 진행된다. 모든 장면을 1인칭 주체의 ‘시점샷’으로 영화처럼 실사 촬영해 제작한 것이다. 이러한 서사적 시점은 관객 자신이 마치 FPS(First Person Shooter)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몰입의 강도를 크게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선택이다. 이어서 종종 서로 다른 서사적 갈래길이 나온다. 그리고 주어지는 힌트를 참조하여 적절한 선택을 해야만 탈출할 수 있고, 때때로 화면에 나타나는 손바닥 버튼을 늦지 않게 터치해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게임은 플레이 타임이 지나치게 짧고 에피소드가 빈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으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콘텐츠의 공급 방식에 있다. 제작사인 벌키픽스 측은 이 게임을 애플의 앱스토어라는 배급망을 타고 편당 1.99달러로 판매하고 있다. 콘텐츠 자체가 게임과 영화의 중간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CD-Rom 형태의 판매 방식이 아닌 온라인 배급이라는 점, 그리고 적정한 가격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터랙티브 영화는 컴퓨터 게임과의 적극적인 융합을 모색하기도 하고, 극장의 스크린을 벗어나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서 교육용 목적으로 상영하거나, 제3의 대안적인 투사형식을 찾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관람의 패러다임
 

인터랙티브 영화의 성립과 전면 활성화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현재와 같이 극장에서 상영과 수용을 하는 조건 하에서 인터랙션의 기능을 수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는 즉각적인 인터랙션이 가능한 인터넷이나 IPTV와 같은 매체 환경 속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관람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관람의 패러다임이 이와 같이 변화한다면 지금의 온라인 게임과 같은 형태의 실시간 서사 방향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즉 영상 제작과 전송, 디스플레이 기술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쌍방향성이 더욱 유기적으로 통합될 때, 그리고 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집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 개인적인 관람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더욱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임과 영화의 경계는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고, 서사는 마치 생방송 스포츠 중계처럼 결말을 알 수 없거나 관객이 과정과 결말을 만들어 갈 수도 있게 되어 극장이라는 것이 아예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향후 10여 년 후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시화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원천기술의 발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주체들의 상업적 판단에 있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계층적 윈도우를 통한 ‘OSMU(One Source Multi Use)’ 방식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냐, 아니면 원소스와 수평적(중첩적 혹은 통합형) 윈도우가 모든 디스플레이 방식을 평정하며 개개인에게 다이렉트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이냐라는 문제 사이에서 이른바 주판알 튕기기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관과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관람보다는 개인적인 관람과 소통이 가능한 사적 공간을 선호할 것이다. 헤게모니의 주체들이 시장에서 유리한 쪽으로 질서를 재편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럴 경우 인터랙티브 영상물은 하나의 대세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전통 방식의 다단계 윈도우를 활용하는 방식이 고수된다면, 인터랙티브 영화 영상물은 주류로 편입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모든 시도들은 과도기적인 것이 될 공산이 크다. 궁극적으로 전폭적인 가상현실체험(5D?)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도래할 때, 이전의 모든 것들은 평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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