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우 / 영화평론가



미래의 어느 날엔가는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로봇 하인이 가전제품 목록에 추가될 지도 모른다. 제조업체에서 세팅한 프로그램에 예측 못한 변이가 생기면서 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0년을 산 사나이’라는 뜻의 이 소설은 “사지가 달린 컴퓨터”에 불과했던 로봇이 인간의 심신과 거의 동일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로봇의 인간되기’ 드라마다.

‘변이’는 로봇 앤드류가 ‘감정’을 느끼면서 시작되었다. 변이의 원재료는 적어도 셋이다. 출시된 그대로의 크롬 금속 육체가 있었고, ‘로봇 3원칙’을 비롯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양전자” 두뇌가 있었으며 구체적 인간관계 속에서의 감정노동(주인의 어린 딸들을 정성껏 돌보는 사건)이 추가되었다. 앤드류는 처음에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회로가 두뇌 어딘가에 삽입된 모양”이라고 오해하지만 이는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하고 독특한 사건이었다. 창조적 감정은 앤드류를 유명한 예술가로 만들어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한다. 이 재산은 한편으로 주인과의 개인적 관계에서 자유를 얻어내는 담보물이 되고 나아가 법정 투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자유를 인증받는 비용으로 쓰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 재산은 앤드류의 몸을 끝없이 개조하는 데 쓰인다. 처음에는 유기체로 합성된 안드로이드로 변신하더니 원자력이 아닌 인간의 음식으로 신체 에너지원을 얻도록 바꾸고, 나중에는 스스로 인공장기를 개발하여 장착한다. 인간수명을 연장시킨 공로로 앤드류는 지구와 식민지 행성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부자가 되지만, 마지막에 “두뇌가 컴퓨터인 한 로봇이다”라는 세계 법원의 판결 때문에 공민권을 얻는 데는 실패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정체성이 뇌라는 오래된 편견은 사실 컴퓨터 뇌를 가진 앤드류에게도 해당한다. 수많은 육체 갱신에도 불구하고 200년간 그의 뇌는 절대적으로 보존되었다. 소설 중반에 동료 폴은 앤드류에게 말한다. “넌 피곤도 몰라. 넌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론으로만 아는 거라구. 넌 지금 죽음은 우리 몸에 잘못이 있어서 발생하는 슬픈 현상이라고 속으로 생각할 거야.” 앤드류는 자신의 “양전자” 뇌를 유한한 유기적 육체와 전면 결합하여 1년의 시한부 인생을 남기는 결단을 감행한다. 이는 공민권을 얻기 위한 극한투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첫 번째 변이가 영장류에서 인류로의 이행이 노동을 매개로 했던 것과 유사한 사건이었다면, 이 두 번째 변이는 타자를 사랑하고 무서워하며 무언가에 분노하기 위해서는 비가역적으로 사멸하는 유한한 육체가 필요조건이라는 깨달음에 기인한 것이다. 인간의 태생적 생체기억과 200년의 기억은 이렇게 등가관계가 되었다. 깡통에서 인간으로, 빈 서판에 한 획씩 추가하는 작가의 솜씨는 인간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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