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욱희 /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진화(Evolution)’라고 하면 흔히 생물의 진화를 연상하지만, 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진보’ 또는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생물 진화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진행되는 생물들의 진보 또는 발전’으로 오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나 나치의 게르만주의의 배후에도 그런 왜곡된 논리가 숨어있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에서 제시했던 ‘진화’의 개념은 그런 ‘진보’와 ‘발전’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생물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경쟁하는 일종의 ‘경쟁의 메커니즘’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다윈의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생물종들의 적응을 설명하는 데에 그쳤다. 진화론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에 유전학이 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전학에 수학과 통계학적 연구결과들이 더해져 유전학과 자연선택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원리가 종합되었는데, 이를 ‘신다윈주의’라고 부른다.

진화의 주체와 메커니즘을 둘러싼 풍성한 이론들

신다윈주의가 출현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도브잔스키, 메이어, 심프슨 등은 집단유전학, 계통학, 고생물학 등의 연구 결과들이 신다윈주의의 원리들과 모순되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 종합설(The Modern Synthesis)’이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설이 타당하다는 것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인정한 쾌거였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 신종합설의 제창으로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신종합설이 대두되기까지 주로 고생물학, 계통분류학, 유전학 등에 의존해서 발전했던 진화생물학은 1950년대부터는 주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킨스를 비롯한 일단의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물들 간의 경쟁이 그리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현장 생물학자들의 관찰을 근거로, 중요한 진화의 메커니즘은 생식을 위한 개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가능한 한 더 많은 유전정보를 남기려는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에 출현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유전자 중심 진화론의 연장이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생물들 간의 경쟁과 투쟁을 부추기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옳다면 어떻게 생물들 사이에서 이타적 현상이나 공생 체제가 빈번히 관찰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면 유전자가 진화의 주체라는 환원주의적 사고에 의심을 품고 보다 전일적인 시각에서 진화의 방법과 개념을 탐구한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생물종들이 상당기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다가 어느 특정한 시기에 급격한 종분화를 이룬다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했던 스티븐 굴드를 들 수 있다.

이밖에도 린 마굴리스는 과거 30억 년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원핵세포(박테리아)에서 진핵세포(동식물세포)로의 진화를 이종(異種) 박테리아들의 통폐합 현상으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또한 우리 지구가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어리가 아니라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주장하는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도 진화 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왜 진화학을 연구해야 하는가

다윈 이래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왔으며, 때로는 그런 관심이 지나친 나머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과학으로서의 진화생물학을 반대하는 일부 비전공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창조해서 진화생물학을 공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은 그런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넓혀 본다면, 학문으로서 진화생물학의 중요성은 그것이 바로 인류의 장래 문제와의 깊은 연관성에 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자연계에서 지나치게 적응에 성공했던 나머지 훗날 갑자기 새로 변한 환경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에 처한 생물종들의 예를 알고 있다. 우리 인간도 현재 주어진 환경에서 지나치게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지나친 적응이 우리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화학 연구가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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