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키워드를 두고 원우 3인이 모였다. 왜 우리는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공부하고 있을까. 각자의 일상이 묻어나오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이 시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이들의 경험과 좌절, 꿈과 이상을 들여다 보자.<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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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청소년학과 석사과정.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일이 바로 위기
청소년에 대한 공부. 실천 학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실습 위주 프로그램의 유학 준비 중.

유승민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호주에서 유학하다 한국인으로서
소속감과 정체성을 찾고자 귀국, 대학원 입학. 한층 더 도약하기 위한 유보점에 서 있음.

노승미  

사회학과 박사과정. PD일을 하다 다시 학교로 복귀.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사유할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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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 주위를 보면 어느 순간까지는 사회에서 용인해주는 것 같아요. 남자가 석사를 한다면 서른하나, 서른 둘 정도. 거길 지나면 의혹의 시선을 받죠. 대학원에 왜 있을까하고. 근데 타인의 시선이 지옥이라고, 이걸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학원에 간다는 게,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기 위한 일종의 유보의 시간이잖아요.

승미 글쎄, 저는 유보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부는 분명 문제의식을 가지고 들어와서 그 답을 찾아가는, 내부적으로 굉장히 치열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유보일 수 있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그게 모두의 전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정현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가장 치열한 순간이 대학원에 다녔던 지난 3년이었거든요.

 

대출받고 조교하며 궁핍하게 공부하기

승미 제가 석사 때는 조교나 학원 강사를 했어요. 덕분에 바빠서 수업 텍스트도 못 읽어가고 그랬죠. 그러다보니까 너무 돈을 벌어보고 싶어서 직장에 다녔는데, 다시 대학원에 들어오니까 체감 상 더 궁핍한 거예요. 지금은 BK장학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일단 타던 차를 팔아서 등록금을 냈구요, 다음 학기에는 대출을 받아야 돼요(웃음).

승민 그런 점에서 우리가 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대학원을 어떤 발판으로 삼고 싶은 거 아닌가요? 경제적으로도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승미 아니에요. 그랬으면 일을 계속 했겠죠. 사실 모두가 교수가 될 수도 없잖아요. 그냥 이건 삶의 방식인 것 같아요.

정현 전 경제적 빈곤이 지금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아요. 다만 자신의 직장상사가 교수님이라면 좀 힘들죠. 세상에 조교만큼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사람 없다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면 넣는 사람들이 조교라잖아요(일동 웃음). 근데 3년 동안 경제적 빈곤마저 행복했던 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치열하게 사는 순간순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승미 공감해요. 요즘 출근하지 않고 평일 낮에 커피숍에서 책 읽을 때마다 내가 이 짓을 하길 잘했지 하죠(웃음).

승민 우리 모두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것 같네요. 저도 조교를 했었는데 힘들긴 했어요. 다른 직원 분들이 조교를 하는 순간엔 학생임을 잊으라고 하더라구요.

승미 그럼 돈을 그만큼 주든가….

승민 그러니까요. 등록금만 딱 나오는데 공부는 내팽개치고 조교 일을 하라는 게 정말 폭력이잖아요.

승미 조교 노조를 만들어야 돼.

승민 어, 있긴 있어요. 초라하게 홈페이지 하나….

 

대학원에서 벽에 부딪히다

정현 전 대학원 처음 왔을 때 실망했어요. 연구할 공간도 없고, 수업 자체에서 주는 만족감도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과목선택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않았구요.

승민 학교 자체가 우리에게 필요조건은 주되 충분조건은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연구주제를 잡아도 충분한 자원이 제공되지 않아요. 가령 인터뷰 때 녹음기, 카메라 이런 게 필요한데 학교에서 지원 안 해주잖아요. 저희 과는 협동과정이라 더 어려워요. 협동과정은 태생이 사생아에요. 여러 엄마아빠를 갖고 있지만 정말 내 엄마로 부를 만한 학과는 없다는 거죠. 이쪽도 저쪽도 다 책임지기 싫어하고요.

승미 협동과정이 저희랑 다른 건 많이 느껴요. 저희 학과는 그런 장비도 다 있거든요. 학교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해줘야 될 텐데요.

정현 <대학원신문> 기사를 보니 여러 협동과정들이 정체성부터 혼란스러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전임교수가 정해지고 라인만 구축되면 괜찮은 과정이라서 여러 방면으로 인력들을 배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승미 협동과정 간에 뭉쳐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학과사무실, 연구공간 이런 걸 균일한 기준으로 적용해달라고.

승민 제가 보기엔 교수님들 자체도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아요. 교수님들이 (협동과정에도) 애착이 많으신 건 알고 있는데 제도상으로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이 많은 거죠. 그래서 최소한 우리 과만을 담당하는 전임교수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정현 연구등록제도 문제죠. 논문심사비 안 받는 대신 연구등록제 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승미 등록비에 연구등록비까지, 학교에서 내 등골을 빨아먹는구나(웃음) 해요.

정현 연구조교 제도도 안 좋은 것 같아요. 이 제도 때문에 석사과정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정해지잖아요. 한 학기라도 지내보고 자기의 특성을 맞춰서 정해야 되는데요. 저희는 지도방 제도라서 한 번 지도교수님이 정해지면 다른 교수님은 얼굴도 자주 볼 수도 없고 아예 따로 가요. 선후배도 같은 방 선후배만 챙기게 되구요.

승미 저희 과는 아직 그런 방문화가 없는데 만들어질까봐 다들 걱정해요. 방문화가 성과주의와 권위주의에 갇히게 할 수 있고, 공부에도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정현 학과 사람들끼리 교류가 아니라 경쟁하게 되고요.

 

나만의 발제 준비 노하우

정현 발제할 때는 각 교수님의 특성대로(?)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덕분에 처음 한 달은 헤매게 되죠.

승미 아, 저는 발제 준비할 때 텍스트를 보고 목차를 일단 쭉 써요. 그럼 텍스트 구조를 알 수 있잖아요. 그 다음에 핵심문장을 골라서 밑줄을 다 치고 그걸 중심으로 요약을 해요.

승민 근데 외국엔 발제라는 개념이 없어요. 강의랑 세미나가 따로 있어서 수업이 4시간이면 두 시간은 강의, 두 시간은 세미나, 이렇게 진행되요. 그래서 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식을 정립할 수가 있는데, 우리의 발제 시스템은 학생들만 분담하다보니까 막상 교수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적은 것 같아요.

 

세미나라는 학문 공동체를 통해 배우기

승민 아무래도 세미나 때는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독재가 아니라 의견을 수렴하는 사람이요. 사람들은 다 자기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승미 그래서 저는 너무 커리를 가지고 하기보다는 관심사 맞는 사람들끼리 썰 푸는, 그런 걸 많이 하려고 해요. 학기 중에는 교재를 좀 느슨하게 보고 말을 많이 하려고요. 요새 난 뭐에 대해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렇게요.

승민 저도 그게 좋은 것 같아요. 텍스트 분석보다 텍스트에서 벗어나 얘기하다보면 재밌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동료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잖아요. 공통 주제,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뭉쳐서 어떤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거.

승미 그러다보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술도 많이 마시는데(웃음) 좋은 것 같아요.

정현 같은 분야의 관심 주제에 대해 여러 명이 모여서 브레인스토밍을 했을 때 다른 사람 관점도 들어볼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효과가 좋죠. 물론 술도 잘 먹게 되구요(웃음).


 
나에게 공부란

정현 공부란 ‘여유’ 다. 나에게만 투자할 수 있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주는 여유인 것 같아요.

승미 공부란 ‘해방감’ 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테두리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 역할을 해주는.

승민 공부란 ‘결핍’ 이다.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으니까. 공부라는 걸로 인해 내 안의 뭔가가 채워질거라 기대하지만 환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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