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과&철학과


  No.0009 박진용 /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법학에서 학문의 대상으로서의 ‘죽음’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생명권, 사형제도, 살인죄, 생명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법학은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때문에 법은 타인의 생명침해에 대하여 사형을 포함한 형벌을 가하거나 재산적인 배상을 예정하고,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이념 속에서 기본권으로서의 ‘생명권’을 전제한다. 전자가 인간을 법의 규율대상으로 본다면 후자는 보호의 대상으로 본다.

얼마 전 법원이 생명연장장치의 제거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김할머니 사건’이 있었다. 식물인간 상태로 소생 가능성이 없는 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가족들의 요구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판결은 환자에게도 ‘진료를 받지 않을 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이 예견되는 단계에서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중단에 관한 생각을 충분히 밝힌 경우 의학적 권고를 받아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될 때 존엄사가 가능하다는 요건을 구체화한 판결이다. 이 판결에 의해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수 있었지만 현재 100일이 넘게 생존 중이다.

영화 <씨 인사이드>에서 주인공 라몬 삼페드로는 “인간으로의 존엄을 지키며 사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대신 죽음을 택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존중받아야 한다면, 존엄을 지킬 수 없어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의지도 존중받는 것이 논리적일 수 있다. 허나 생명은 윤리적·종교적·과학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형평의 법의 저울’ 속에서 죽음의 권리와 살아갈 권리,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 수 없다. 존엄사 실행 후 할머니가 생존하고 있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법적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는 초자연적인 명령일지도 모르겠다. 법은 과연 인간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이후로도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No.0009 김형주 / 철학과 박사과정

한 사람이 죽었다. 의사의 입에서 죽음이 선포되면 그 죽음은 하나의 사실이 된다. 이 사실을 둘러싸고 경찰은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원에서는 책임소재를 밝힌다. 이 사실을 둘러싼 또 다른 사실들은 판사의 입을 통해, 혹은 수사관의 입을 통해 발생된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사실로서 우리에게 제공된다. 이 죽음이라는 사실의 세계에 철학은 개입할 수 없는 듯이 보인다.

한 사람이 죽었다. 의사도 판사도 아무것도 아닌 나는 눈앞의 죽음을 단지 이 사태를 목도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받아들인다. 어쩌면 슬플 수도, 어쩌면 무덤덤할 수도 있다. 그때의 기분, 판단은 단지 그것일 뿐 이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거리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결코 나 자신 밖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가시고 나면 우리에게는 그것으로부터 남겨진 어떤 것이 생겨난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태도는 여기서 시작된다.

철학은 죽음을 완전히 주관화하지도 완전히 타자화하지도 않는다. 철학은 죽음을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철학은 죽음 자체에 자아를 함몰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주관적 체험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죽음, 바로 그 자체에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즉 철학은 본능적으로 일종의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사태가 나에게 주는 의미, 나아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한다. 철학적 거리두기는 어떤 식으로든 가능하다. 따라서 의사 혹은 판사의 입에서 선포됨에 따라 하나의 사실이 되는 ‘죽음’에 대해서도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 사실이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이로써 죽음의 현상학, 죽음에 대한 윤리학, 죽음에 대한 해석학은 가능해진다.

철학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줄타기를 한다. 주관화와 객관화, 내면화와 타자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면서 문학에, 과학에, 종교에 말을 건다. 철학의 죽음에 대한 접근은 이렇게 다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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