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호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질문: 석사 2학차 학생입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며 그저 그런 회사에서 1년을 보내고 고심하다 결국 대학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내가 여기 왜 왔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주변사람들은 여자가 대학원 가는 거 안 좋게들 보더군요. 사회에 뛰어들기 겁나서 허영심과 환상으로 어정쩡하게 걸쳐놓는 거라고. 정말 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건가요?


진단: 예. 대학원생 현실도피자 맞습니다. 그럼, 아닌 줄 아셨나요. 뭔가를 더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시간을 버는 것. 우린 ‘도피’를 ‘준비’라는 말로 곧잘 바꿔 부르곤 하지요. 아, 그렇다고 환멸감에 빠지지 마세요. 뭘 해야 할지 확고하지 않아서 무작정 시작하는 직장생활 또한 욕망없는 자신을 확인하기 버거워 생활로 도피하는, 일종의 ‘현실(로)도피’이니까. 그런데 도피가 왜 나쁜 거죠? 어쩌면 현실은 도피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요. 대학원이라는 곳이 어중간한 곳이긴 해요. 대졸백수보단 폼 나고, 그래도 다니는 동안 뭔가 내공이 쌓이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학원이 전혀 폼 나지 않는, 비루한 곳이라는 것은 다녀보면 알게 됩니다. 그건 직장이란 밀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곳이라는 것을, 다녀보면 알게 되는 것과 똑같은 거죠. 현실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알고보니 ○○○’를 대면하는 것입니다. 시간낭비는 의외로 유익합니다. 비상구에 대한 미련의 부질없음을 진즉에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죠.


처방: 연배의 수다를 경청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김애란이라는 또래 작가의 <침이 고인다>라는 소설집을 몇 점 씹어 보시길. 그녀가 이십 대이던 시절 이야기를 묶어놓은 이 책에서 그녀는 흔히 말하는 ‘대졸 먹물 막장’들의 남루한 군상을 정갈하게 차려냅니다(비루할수록 정갈한 차림이 필수지요. 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음, 아나고회의 맛이라고나 할까요. 별로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가실가실하게 산뜻한 미각체험. 가끔씩 잇몸을 찌르는 가시들이 알알하게 건드려 올 때, 대단한 성찰은 없습니다만 두고두고 음미해 볼만한, ‘재능 없는 삶에 향신료 뿌리기의 레시피’ 정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리번거려봐야 별 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별 볼일 없는 재료만 주어진 우리 삶을 어떻게 손질하며 향을 낼 것인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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