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저지른 일이 아니지만 죄책감을 느껴야하는 경우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그러하고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불고 있는 칼바람이 또한 그렇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생전 그에 대한 정치공세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재조명되고 있다. 그 중 본교 문예창작학과 이대영 교수(現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가 연출한 연극 <환생경제>는 현 정권의 정치 목적이 ‘보복정치’라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시종 욕설로 점철된 이 막장연극에서 저승사자로 분한 주성영 의원은 노 대통령을 “3년 후에 데리고 가겠다”고 엄포했다. 결국 그들의 예언대로 되고야 말았다.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벗어날 방도가 있겠는가. 검찰의 표적감사와 언론플레이로 노 대통령이 세상을 등진 현재에도 이 정권의 칼부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에 칼자루를 휘두르는 이는 본교 연극학과 동문이자 교수이기도 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문화부가 6주 간의 장기 표적감사를 벌인 결과 지난달 19일 황지우 한예종 총장이 사퇴했다. 징계사유는 ‘공금횡령’(600만 원의 영수증 미처리)과 ‘근무지 이탈’ 등이다. 횡령이라기보다는 실수에 가까운 영수증 처리 문제와 문화부의 허락 없이 주말에 자비로 일본여행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총장직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이런 정도의 문제로 사퇴를 해야 한다면 전국 대학의 총장 중에 자리보전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싶다. 어쨌거나 이 사건에 대해 문화계에서는 “문화부가 마침내 노무현 정부시절에 임명된 현직 인사들에 대한 물갈이를 완료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문화계 보수인사들 사이에서 “한예종은 문화예술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으로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현재 이들이 좌파로 지목한 교수들에 대한 추가적인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다. ‘좌파’교수들이 강의하거나 재직하고 있는 이론전공학과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근거는 “이론수업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이유로 존폐위기에 내몰린 학과는 영상이론과를 포함한 8개 학과다. 졸지에 교수와 학과를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 학생들은 매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예술가’를 ‘기능인’으로 전락시키려는 현 정권의 몰상식과 전 대통령이든 교수든, 가리지 않고 칼끝에 세우는 무참한 보복정치에 항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교 교수들이 잔인한 보복정치의 선봉에 서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외면하고 침묵해온 것에 공동의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많은 이들이 후회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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