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률 /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

 

         ■ 이명박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25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뒤 한중관계는 기존의 ‘밀월관계’가 더욱 심화·발전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이례적으로 5월과 8월에 연이어 상호방문을 통한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라는 새로운 유형의 관계 ‘격상’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양국이 형식적인 ‘관계격상’에 부합하는 내실 있는 관계발전을 이뤘는지, 특히 ‘전략적’이라는 새로운 수사에 걸맞은 협력이 추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 등장 이후 양국간 신뢰에 대한 의문이 표출되고, 양국 국민들 사이에는 반한·반중의 정서적 반감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명박정부 등장 이후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정책적 몰입이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보수성향의 이명박정부는 이미 출범 이전부터 한미동맹의 복원 및 강화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둘 것이라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분명히 전달해왔다. 특히 지난 4월 이명박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통해 한미 전략동맹을 선언한 이후 중국은 우려와 경계심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은 한미동맹 강화의 궁극적인 목표와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중국은 한미 전략동맹이 기존의 양자동맹 성격에서 지역·글로벌동맹으로 확대되고 주한미군의 지역 문제, 특히 유사 사태시 대만에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가치동맹을 강조하는 것은 한·미·일 동맹이 이른바 가치와 체제가 상이한 중국을 겨냥한 일종의 반중국 동맹의 성격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경계심은 이명박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길에 중국외교부 대변인의 “한미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논평을 통해 거칠게 표출되기도 했다.
둘째, 더 근원적인 이유로 한중관계가 수교 이후 지난 16년간 눈부신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발전이 수반되지 않은 점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의 교역대상국이자 투자대상국이며, 양국간 주당 항공운항이 8백여 편에 이를 정도로 양국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정작 신뢰구축과 위기관리 체제의 수립 등 내실 있는 관계발전이 이뤄지지는 못했다. 이러한 외화내빈적 관계발전은 이명박정부 등장 이후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을 증폭시켰고, 국민적 정서의 충돌마저도 합리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양적 교류의 팽창이 오히려 한중관계에 예상치 못한 다양한 갈등과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내실 있는 발전보다는 형식적 관계 격상에 치중해온 것이 화근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관계의 조화

  한중관계는 현재 중요한 기로에 직면해 있다. 지난 16년간 밀월관계를 가능케 했던 요인들, 즉 경제협력의 상호필요성, 대북정책상의 수렴, 미국과 중국 간의 제한적 경쟁관계 등 환경적 요인에서 변화가 진행되거나 예상되고 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한중관계의 외형적 성장 기조 속에 간과되어왔던 미시적 차원의 현안들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채널과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실화 작업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한미 전략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는 적어도 중국의 입장에서 양립 불가능한 이질적인 관계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탈냉전시기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반자 외교는 미국 중심의 쌍무적 동맹체제를 대체하려는 의도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현실적으로 미중관계의 안정기조가 유지되는 현 시점에서 한미동맹관계가 파열도 강화도 아닌 적정선에서 유지되는 것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에게 대미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중국 부상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국이 강대국으로의 부상을 지향한다면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미국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차기 오바마 미국정부 역시 중국을 ‘경쟁자’보다는 지구적 현안을 해결하는 데 책임과 이익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상정하고 대화와 협력을 지향하려는 정책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가능성은 높지 않다. 즉 한국 입장에서는 상충될 수 있는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와 한미 전략 동맹관계를 병행하기에 유리한 국제 환경이다.
  그런데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급격히 부상하는 것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한미동맹관계의 강화와 복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실용적인 외교적 접근 방식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게 중국의 비중은 너무 커졌고, 한반도 주변 국제관계 또한 복잡 미묘해지고 있다. 강대국간 세력경쟁을 제어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설픈 양다리도 위험하지만, 일방적 편승 역시 무모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중·한미·한중관계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속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다분히 관계발전이라는 일반적 관성에 따라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미국과의 전략동맹, 그리고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형성은 상호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질적인 특성을 더욱 분명하게 노출시켜 국내외 논란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될 경우에 한중 동반자관계와 한미 동맹관계의 이중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그러한 준비를 하기에 적기이다. 즉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상충적인 양자관계의 갈등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적인 개편 노력, 예컨대 다자간 안보협력 논의를 구체화하는 준비와 노력을 중국, 미국과 함께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차기 오바마 미국정부도 다자안보협력에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이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동북아에서 다자안보협력이 구체화되기까지는 북핵 문제, 영토분쟁 문제, 주도권 문제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해보인다.

                                 원칙에 입각한 주체적인 외교자세

  따라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실현 노력과 병행해 중단기적으로는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와 한미 전략 동맹관계가 일정 기간 양립 가능하도록 미국, 중국과 각기 신뢰를 강화시켜가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미국과 중국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어설픈 전략적 태도는 오히려 한국의 입지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발전을 위해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중미관계가 지금처럼 경쟁과 협력이 균형적으로 유지된다는 전제에 부합하는 논리이다. 만일 미중관계가 지나치게 밀착되거나 갈등관계가 심각해질 경우에는 유효한 접근 방식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대국간 세력경쟁구도에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미중 경쟁구도에 휘말리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원칙에 입각한 일관된 외교행위를 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향후 미중 양국이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이해관계로 충돌했을 때 한국이 미중 양국 중 어느 일방의 편에 서지 않아도 양국이 모두 이를 납득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한국은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며, 그를 통해 한국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이미지를 체계화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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