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에 의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개념 중의 하나가 ‘추방(ban)’이다. <호모 사케르>에서 아감벤은 “원래 삶에 대한 법의 관계는 적용이 아니라 유기(遺棄)이다”라고 말하며, 주권권력의 힘은 “삶을 추방해 유기함으로써 그 삶을 붙드는 것”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아감벤은 이런 유기, 즉 추방을 포고할 수 있는 권리가 오직 주권자에게만 있다는 점에서 이를 주권자의 ‘예외적인’ 힘이라고 부른다. ‘예외상태’란 바로 이런 추방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상태이며, ‘호모 사케르’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주체이다.
그러나 몇몇 연구자들, 특히 프랑스 철학자 장-뤽 낭시는 추방을 주권자의 예외적 권리로만 보지는 않는다. 고대 독일어에서 연원한 ‘ban’에는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라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주권권력이 (개인의 인신을 보장하는) 법에 대한 예외로서 추방을 행한다면, 공동체는 차별ㆍ거부ㆍ반발ㆍ배척의 형태로서 추방을 행한다. 이렇게 본다면 주권권력과 공동체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진다. 주권권력이 추방한 존재를 공동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다시 말해서 주권권력이 추방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공동체) 사이에 인위적으로 부과한 차별성을 해당 공동체가 수용할지 안 할지는 확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권력이 행한 추방을 공동체가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 주권권력이 추방한 자와 공동체가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놓는 낭시의 이런 주장은 주권권력에 대한 저항을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