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5.5 화 23:34
기획사회
미 대학가, 좌향좌에서 우향우로?문강형준 /미국 위스콘신대학(밀워키) 영문학 박사과정
이재원 편집위원  |  jaewoni@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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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승인 2008.10.03  00: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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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진보적 학풍을 주도했던 ‘베이비붐’세대의 교수들이 대거 은퇴함으로써 미국 대학의 정치적 성향이 중도쪽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국내에서도 오세철, 김수행, 최장집 교수 등 8~90년대를 대표하던 좌파 교수들이 정년퇴직하자 보수언론들은 학계의 보수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대학가의 이념 변화가 세대 변화의 문제일까? 미국의 사례를 통해 그 근본원인을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7월 3일 <뉴욕타임스>는 “리버럴 성향의 교수들이 은퇴함에 따라 60년대가 사라지기 시작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격동의 6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내고 대학교수가 되어 진보적 학풍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 교수들이 은퇴하기 시작하고, 3~40대의 젊은 교수들이 대학의 주축이 됨으로써 미국 대학에서 진보적 색채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교육통계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1969년 당시 50세 이상의 전임교원이 전체의 22.5%였던 데 비해 2005년 현재 50세 이상 교수의 비율은 54%가 넘는다. 그리고 이 50세 이상의 교수들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리버럴’하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3~40대 교수들은 절반 이상이 자신을 ‘중도’라고 대답했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발표된 그 다음날 <조선일보>는 “미 대학가 진보의 퇴조”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기사를 그대로 요약해 실었다.

세대 변화가 아니라 대학 자체가 문제
그러나 통계분석만으로 미국 대학의 분위기를 논하기에는 부족하다. 우선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통계들은 오직 ‘전임교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 대학처럼 미국 대학도 강의의 많은 부분을 ‘비상근교수’, ‘시간강사’, ‘조교’가 담당한다. 이들 대부분이 아직 조교수로 임용되기 전의 젊은 학자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미국 대학의 강의실은 많은 부분 30대의 젊은 세대가 맡고 있다.
또한 젊은 교수들의 절반 이상이 자신을 ‘중도’라고 말했지만, ‘보수’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10%도 되지 않는다. 즉, 35~49세의 젊은 교수들 중 90% 이상이 리버럴과 중도입장을 가진 것이다. 60세 이상의 교수들 역시 90% 이상이 리버럴과 중도다. 이렇게 보면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리버럴’을 민주당이라고 하고 ‘보수’를 공화당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통계적으로 미국 대학에서 공화당은 10%도 안 되는 셈이다. 이를 가지고 “진보의 퇴조”라고 기다렸다는 듯 기사를 받아쓰는 <조선일보>가 안쓰럽다.
하지만 그것이 곧 미국 대학이 ‘좌파’ 성향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 민주당이 좌파가 아니듯 리버럴과 중도로 이뤄진 미국 대학교수들의 성향 역시 좌파와는 거리가 멀다. 일리노이대학(시카고) 도시계획/정책학과의 좌파 교수인 존 베탄쿠어는 “베이비붐 세대들은 나이가 들면서 이미 보수화가 된 지 오래”라고 잘라 말한다. 그가 볼 때 ‘리버럴’한 미국 대학 역시 보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같은 세대 문제라기보다는 대학 자체의 변화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성기를 구가한 포디즘 시기가 끝나고 70년대 말 이후 포스트포디즘 시기가 오면서 60년대까지만 해도 자본과 긴장관계에 있던 대학은 자본의 영향력에 굴복하게 된다.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 흡수됐고, 대학 역시 리처드 워닉의 표현처럼 ‘판촉대학’의 분위기로 변모했다. 이제 대학도 자신의 이름을 상품처럼 팔아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면 궁핍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령 최근 위스콘신대학(매디슨) 경영대학은 ‘위스콘신대학’이라는 이름을 발려주는 대가로 기업에서 기부금을 받기로 결정했다.

대학의 기업화는 사상의 죽음
대학이 자본과 결탁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기업화’하는 경향도 생겼다. 학생을 소비자로 보고 대학교육을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식의 생각, 대학총장이 CEO처럼 대학 발전을 위해 돈을 모은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스탠리 아로노위츠는 이를 ‘기업대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학순위 매기기’가 성행하는 것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대학이 기업화, 자본화된 상황에서 교수들은 종신재직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논문을 써야 하고, 그 논문이 하나의 ‘성과’가 되어 ‘점수’로 환원되고, 이 ‘실적’이 많을수록 ‘자금’도 더 많이 끌어올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쪽은 덜하지만, 정책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많은 저널에서는 좌파적이거나 급진적 성향의 논문을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실적’이 따라주지 않아 종신재직권을 못 얻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자연히 좌파 교수들이 진입하는 데 장벽이 생기는 것이다. 마틴 리는 <급진적 사상의 죽음>(2005)이라는 논문에서 과거의 대학이 지식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냉정한 전문가’로 차 있었다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대학은 기능과 성과, 업무처리에만 바빠 세상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신경쓰지 않는 ‘무관심한 전문가’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확실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학의 자본화와 기업화는 시작됐고 그 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학과나 공학과는 사기업의 연구소와 더 밀접히 연결되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는 자금지원이 줄어들면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당연히 ‘장사가 되는’ 경영학이나 공학쪽의 규모는 커지고 교수들도 더욱 많아지게 되며, 전체적으로 비판적인 인문학 교수들의 규모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 대학 역시 이와 비슷한 변화를 90년대 이후로 겪고 있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미국 대학이 ‘좌향좌에서 우향우’로 변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선일보>가 뽑은 제목처럼 ‘진보가 퇴조’하는 걸까? 좌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20년 전부터 나타난 경향을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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