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용 / 회계학과 석사과정

몇 해 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샀었다. 책 내용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지만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만은 확실하게 남아 있다. 안 그래도 느려터진 놈이 왜 이런 책을 샀냐고 말이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책에서 의도한 바와 달리, 마냥 ‘느리게’ 살면서 무언가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기만 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난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그 게으름을 없애보고자 선택한 도구가 바로 자전거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찾아 헤맸던 느림의 의미를 자전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도 느리게 산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며 조금은 여유롭게, 속된 말로 ‘사람답게 산다’는 뜻인 것 같다. 온갖 기계들로 뒤덮인 도시에서 기계와 함께 호흡하며 마치 기계처럼 사는 요즘의 나와는 달리 이 자전거라는 놈은 기계 주제에 사람냄새가 난다. 덕분에 이놈과 함께면 답답하고 어두컴컴한 땅굴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경박한 소음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진땀을 흘려가며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습관처럼 버리게 되는 돈도 내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게 된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2기통 콧구멍으로”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것이랄까. 하지만 그건 김기택 시인의 말처럼 무공해로 “금방 맑은 바람이 되어” 사라져버린다. 


어떤 이들은 언덕을 오를 때 자전거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무언가를 정복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 때문인지, 아니면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었을 때의 희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생이 게으른 나는 그런 정복감이나 희열에 전혀 욕심이 없다. 무턱대고 높은 언덕길에 도전했다가 페달에서 내려와 쓸쓸히 자전거를 끌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울고 싶어진다. 그저 평지를 유유자적하며 다니는 것이 마냥 좋다.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바람과 페달을 밟음으로써 내 능력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느낌만이 좋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자전거를 통해 깨닫게 된 ‘느림의 미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 숨 막히게 많은 사람과 차, 그리고 신호등. 너무 덥고 땀이 난다는 등 수많은 핑계들. 자전거와 내가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타협점은 아마도 또 몇 해가 지나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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