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학과 교수

 

현재 미국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정책기조는 분명하다. FTA 확산은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만 미국의 국익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경우에는 찬성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심지어 이미 ‘우방’ 국가들과 체결한 모든 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정부가 재협상에 나설 것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거기에는 한국과의 FTA도 포함된다.


유력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한미FTA 재협상을 거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와 섬유 등 몇몇 제조업 분야의 협정 내용이 미국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국제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산업군의 기업과 노동자들이 입게 될 피해이다. 그러나 그들은 투자나 지적재산권, 그리고 금융, 법률, 교육, 영화, 방송산업 등이 포함된 서비스업 전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쇠고기협정이 체결된 후 농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섬유 등을 제외한 제조업 분야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모두 미국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오직 극소수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이유로 이미 체결된 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민주당이 말하는 ‘국익’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국익의 핵심이란 산업, 기업, 노동 등 주요 경제 이익집단들의 이익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당의 FTA 정책기조는 자국 내 경제주체들의 이익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식대로 하자면 한미FTA 재협상 요구는 우리 쪽에서 더 강력하게 제기됐어야 한다.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서비스업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미국에 비해 크게 열등하다. 투자와 지적재산권 등의 영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결국 농업, 투자 및 서비스 분야의 자유화로 인한 한국의 손해는 불 보듯 뻔하다. 경쟁력이 부족한 한국의 상당수 산업과 기업, 그리고 노동자들이 퇴출, 도산, 실직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기존의 양국 관세율을 고려할 때 제조업에서도 한미FTA는 한국의 대미 수출보다는 대미 수입을 훨씬 큰 폭으로 증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와 섬유는 한국의 수출이 (아마도 소폭에 불과하겠지만) 그나마 더 늘 수 있는, 그야말로 예외적인 극소수 분야일 뿐이다. 게다가 협정문에는 한국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위협하여 시장 과잉과 공공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투자자-국가 제소권 및 비위반제소권, 그리고 우리 서비스 산업의 무분별한 개방이 미래까지 무한 지속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래칫조항(rachet: 한번 개방된 수준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조항) 등의 독소조항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재협상 요구는 오히려 미국 쪽에서 나오고 있다.

 

 

 

독소조항 가득한 한미FTA

 


어쨌든 미국 정부가 실제로 한국 정부에 재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의회에 이어 백악관까지 장악할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미 미국 정부는 2006년 페루와 콜롬비아와의 FTA 체결 후 의회, 특히 민주당의 압력으로 재협상을 강행한 바 있다. 이미 체결된 무역협정일지라도 그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될 경우, 정부는 의회의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 이전에 재협상을 통해 협정 내용을 수정 혹은 보완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요구가 관철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식 일방주의의 적용에서 한국만이 예외가 될 리는 없다. 참고로 페루와 콜롬비아는 미국에게 전략적 중요성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국가들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미국과의 FTA는 철저히 경제논리에 의해 풀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한미동맹의 공고화에 기여한다’는 등의 막연한 안보 논리에서 벗어나 냉철한 정치경제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한미FTA 문제, 특히 재협상 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 미국식 논리로 무장하여 미국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직면하기 이전에 우리 국회와 정부가 준비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다. 그중 몇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무엇보다 정부간에 이미 체결된 한미FTA의 내용을 다시금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도 국내 경제주체들의 이익극대화를 핵심목표로 삼아 협정의 내용을 재구성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산업, 기업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득과 손실을 볼 것인지 세밀하게 분석해 이득은 늘리고 손실은 줄이는 방향으로 재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둘째, 만약 특정 경제주체의 상당한 손해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 보상책을 충분히 강구해두어야 한다. 여기에는 한시적인 금전적 보상만이 아니라 경쟁력 제고를 위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대책 마련, 사회안전망 강화, 복지 확충 등이 포함돼야 한다.


셋째, 기존 한미FTA 내용 점검 결과, 협정의 발효로 인한 사회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 증대, 공공성 훼손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폐해들이 매우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설령 미국 쪽에서의 재협상 요구가 없다고 해도, 우리 쪽이 먼저 미국 정부에 재협상 요구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기체결된 한미FTA에 대해서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라는 우려 섞인 평가를 내린 상태이다. 특히 자본이동의 자유화 정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통합이 급격하게 진행될 경우 한국 사회ㆍ경제체제의 급속한 신자유주의화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통합은 체결 국가간의 제도, 정책, 규범 등을 수렴케 하는데, 그 수렴은 일반적으로 경제규모와 경제발전 정도가 크고 높은 국가 쪽으로 편향되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의 경제통합은 한국의 제도, 정책, 규범 등이 미국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수반할 것이고, 그로 인해 결국 한국 사회ㆍ경제체제가 ‘미국화’된다는 예측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정부의 시장개입 최소화 등을 강조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제도, 정책, 규범 등을 규정하게 될 경우 가뜩이나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상업시장화나 양극화 문제 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비준동의안 통과, 신중하게 결정해야


만일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된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재협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신자유주의적인 이명박정부는 어쩌면 쇠고기협정 때에도 그러했듯이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 비준권을 갖고 있는 우리 국회가 재협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제법적으로도 재협상의 법리는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미국 스스로도 이미 페루와 콜롬비아와의 전례에서 보여주었듯이 FTA 재협상을 여러 차례 감행한 바 있다. 원칙적으로도 국회 비준 이전에, 즉 발효 전 상태의 국제협정에 대한 재협상은 사정이 변경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 모든 경우를 준비하는 데 있어 우리 국회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예의 미국 민주당식 해법, 즉 체결된 FTA일지라도 문제가 발견된 경우에는 재협상을 불사한다는 해법을 염두에 둔다면, 미국 의회에 앞서 우리 국회가 비준동의안을 먼저 통과시켜주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국회의 비준과정이 끝나면 협정의 모든 내용은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며 우리 쪽에서는 더 이상 내용의 일부조차 변경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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