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인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새정부 실용외교 진단 : 한미동맹
‘실용외교’를 기조로 하는 이명박정부의 외교는 현재 총체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불거진 대북관계의 냉각화, ‘조공외교’, ‘굴욕외교’로 지칭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야기한 대대적인 국민저항운동과 대내외적 신뢰도 하락, 일본과의 영토분쟁 등 대외관계는 ‘절교’에 가까울 정도로 참담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정세 속에서 새정부의 실용외교 정책을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25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한국 측은 대만 문제 관련, 2008년 5월 한중공동성명에서 밝힌 입장을 재천명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견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많은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미전략동맹’과는 논리적으로 모순되며 상당한 긴장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즉, 전략동맹의 핵심에는 한미동맹이 중국을 견제한다는 내용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이명박정부가 제안한 전략동맹을 적극 수용한 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통한 중국 견제 심리 때문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양안사태(중국과 대만의 충돌) 발생 시 주한미군을 투입하겠다는 의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명박정부가 한미동맹을 통한 미국의 중국 견제와 한중관계를 통한 중국의 미국 견제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호 모순관계를 알면서 합의한 저의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26일에는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불능화 중단과 원상복구 고려’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정부는 과잉반응할 필요가 없다면서 북핵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진행해온 대북 설비·자재 제공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이번 선언에 대한 북한의 대외적 명분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명단에서 북한이 삭제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이지만, 속내는 남한에 기울어진 미국과 중국을 다시 북측으로 끌어 들이겠다는 외교전략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고 북미 핵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검증방식이 놓여있는데, 핵신고서에 대한 세부 이행계획을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이 약속된 기일 안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행정부가 검증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외교적 협상보다 대선이라는 국내정치를 선택했다. 이로써 남은 것은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만약 매케인정부가 들어서면 한미동맹이 강화되어 한반도 안보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미동맹 제일주의로 고립을 자초하다

이렇게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이 매우 역동적이기 때문에 섬세하고 밀도 있게 접근하지 않으면 한국은 외교적 고립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출범 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을 시작으로,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망사건,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 아세안안보포럼, 의장성명 수정파문, 미국 지명위원회 독도 분쟁지역 표기까지 이어지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져든 것이다.

그것은 ‘한미동맹 제일주의’가 절대적인 가치로서 중심을 이루고 있기에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대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ABDR’(Anything But DJ·Roh,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반대)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자리 잡은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 국제정치, 세계질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안보정책의 이념으로 선택한 ‘실용주의’는 전술이지 전략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와 보편주의를 내세우면서, 힘과 동맹에 기초한 정책을 우선시하려 한다. 이는 담론체계 내부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상황에 따른 이익의 변동을 고려하기보다는 선험적으로 설정한 가치(한미동맹)에 근거하여 이익을 계산하는 셈이니 말이다. ‘북한=적’과 ‘미국=친구’라는 이항대립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실용주의가 아니라 힘의 우위에 입각하여 정책을 실천하는 현실주의와 유사하다. 힘과 동맹을 절대시하는 태도는 과거지향적, 임기응변적, 반사적 정책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지고지순한 외사랑은 쇠고기 졸속 협상으로 양국 간 신뢰 균열과 대통령의 존재감 상실로 이어졌으며,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미국 측이 한미공조의 약속을 어기며 이명박 대통령의 ‘뒤통수’를 때렸다. 게다가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미확정(undesignated sovereignty) 상태로 수정함으로써 외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한미동맹을 제일의적인 외교정책으로 꼽아온 이명박정부에게 사전공지 없이 이뤄진 처사였기 때문에 연속으로 ‘뒤통수’를 맞게 되었다.

지난 4월에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관계를 안보 중심의 군사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로서의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들이 강조하는 전략동맹은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세계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한반도 긴장완화와 다자간 안보협력의 네트워크 구축 등의 기반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한미동맹이 기후변화와 대테러전, 평화유지군 활동 등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국제평화 구축에 기여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미국이 한미동맹 확대를 강조하면서 다방면에서 한국의 지원 및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요소가 바로 한미FTA 비준안 처리, 한국의 미국산 무기구매국 지위 향상, 주한미군 기지이전·재배치 및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비롯한 한미동맹조정 관련 합의사항의 이행 등인 것이다.

그래서 4월 한미정상회담은 비대칭적, 불균형적, 부등가적, 불공정한 회담이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지역동맹으로 변경하고 합의해줬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사일 방어체제 편입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참여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한미동맹에서 6자회담의 다른 참여국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이다. 또한 기존의 프로세스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균형적인 자세를 유지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이와 함께 한미동맹이 남북관계에 어떠한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사진출처: <통일뉴스>, 2008. 4.15
사진출처: <통일뉴스>, 2008. 4.15

 

대안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이렇게 이명박정부의 외교정책에는 한미동맹 제일주의가 그 중심에 놓여 있으며 북·중·4러가 삭제되어 균형감각이 없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주변 4강의 존재 등 외교의 지정학적 한계에 대한 인식과 동맹외교의 낡은 인식틀을 벗어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또한 노무현정부와의 차별화 관점에서 맹목적으로 정책을 설정하다 보니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다. 맹목적 차별화는 과잉만 앞세우게 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추구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정교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 강화는 전략상 필요하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 외교 안보를 강제하는 규정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한미관계는 한반도 평화 및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과정에서 주변 국가들과의 전략적 이익이 교집합을 이루는 전제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동북아에 대한 미국적 해법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만이 동맹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도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대안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 이명박정부는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전망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과 다자외교를 시도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는 6자회담 공동성명에도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동의 기반은 이미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6자회담을 활용하되 6자회담을 뛰어넘는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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