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생태공원에서 워커힐호텔까지 굽이 올라가는 1.5km의 가로수길. 자동차도로 양쪽애 늘어선 벚나무가 4월이면 새하얀 터널을 이룬다. 열흘 남짓 한없이 부풀어 오르다가 한줄기 바람에 공중으로 흩어지는 벚꽃.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김훈의 <풍경과 상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꽃잎 쏟아져내리는 벚나무 아래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었다. 문명사는 개똥이었으며, 한바탕의 지루하고 시시껍적한 농담이었으며, 하찮은 실수였다. 잘못 쓰여진 연필 글자 한 자를 지우개로 뭉개듯, 저 지루한 농담의 기록 전체를 한번에, 힘 안 들이고 쓱 지워버리고 싶은 내 갈급한 욕망을, 천지간에 멸렬하는 꽃잎들이 대신 이행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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