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아 / 민주노총 여성부장

1908년 미국 뉴욕의 한 봉제공장에서 146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화염에 싸인 채 싸늘히 죽어갔다. 노동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싸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3.8 세계여성의 날’ 100주년이 되는 올해,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열악한 여성노동의 현실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랜드 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재계약 쟁취 투쟁, KTX 여승무원의 간접고용 외주화 반대 투쟁, 나이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 투쟁 등 숱한 비정규직 투쟁의 중심에 여성이 선두에 서고 있다.

중소영세 사업장이라 10년을 꼬박 근무해도 월급 100만 원에 만족해야 하고, 학습지 교사들은 아이를 유산해도 쉴 수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분리직군제가 만들어져 승진·승급도 봉쇄되고 차별적 처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여성 직종이 간접고용으로 외주화되면서 고용불안에 신음하고 있다. ‘노조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 노동을 보장하라’는 100년 전 외침이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라’,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라’,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라’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변함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2006년 여성 경제활동 인구 천만 명 시대라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성노동자 644만여 명 중 70%가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100만 원도 안되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에 고통받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학습지, 경기보조원, 텔레마케터, 보험모집인들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비공식 부문의 가사서비스, 간병인, 재활노동에 종사하는 대다수 여성노동자들 역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결혼,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일터를 떠나야 하는 여성들도 여전히 많다. 또한 여성은 채용 및 승진·승급에서의 간접차별을 받고 있으며,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60~70%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건강마저 양극화 되어버린 이들에게 더 이상 노동은 ‘희망’일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으로 여성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성을 저임금 노동으로, 단시간 근로로 활용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동정책은 여성 노동을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노동으로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기에 우려스럽기만 하다.

 

여성권한 척도 97개국 중 67위

‘알파걸’, ‘골드미스’라 불리는 소위 잘 나가는 몇몇 여성들의 그늘에 가려 대다수 여성들의 현실이 외면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권한척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97개국 중 67위로 얼마나 후진적인지 알 수 있다. 임금격차 또한 전세계 평균 16%의 두 배 이상이나 벌어지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대기업 3곳 중 1곳이 채용에 있어 남성할당제를 암암리에 시행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또한 그동안 차별적 조항으로 지적되어 없어졌던 군가산점 제도가 다시 부활하려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를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강제조항이 없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렇듯 그동안 수없이 문제제기 되어 왔고,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여성노동의 문제, 개선되지 않는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우리 사회는 이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여성에게 차별 없는 일자리와 당당한 삶을”이란 구호를 내걸고 ‘3.8 세계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가 개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날은 우리끼리 쓰는 표현이지만, 여성노동 문제를 이슈화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속칭 ‘반짝 장사’를 하는 날이다. 여성정책은 모든 정책에 두루 포함되어 있어 매우 광범위하고, 여성노동권의 문제 또한 전체 노동의 문제에 포함되어 있어 산적한 노동 과제들 속에서 특화해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이제는 여성노동 문제가 이슈이다. 비정규 문제의 핵심에 여성노동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3월 8일 하루 ‘반짝 장사’로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이제는 ‘반짝 장사’를 때려치우고, 여성노동 문제를 전체 노동문제로 전면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여성노동이 행복한 세상이 오기를. 여성이 행복하면 모든 노동자가 다 행복한 세상이지 않을까.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