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관 /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요즘 사방에서 문화와 공공디자인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문학자,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은 문화와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디자인에 대한 강조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차원에서 마치 ‘새로운 새마을 운동’이라도 되는 양 전방위로 추진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정부는 “소프트파워가 강한 창조문화국가”란 기치 아래 야심찬 문화진흥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 발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존 도시를 문화적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공간 및 공공디자인 기반 조성 정책들이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추진되는 이러한 정책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몇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발견된다. 이 우려는 어쩌면 문화와 도시디자인의 본질을 역행하는 치명적 결과로 비화될 수 있는 것이다.

공공디자인인가 또다른 문화공해인가

우선 정부가 문화와 도시디자인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문화와 도시가 산업적으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상품성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이는 현재 경제가 ‘문화경제’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문화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여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문화상품만을 생산한다면 문화가 일시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후세에도 계속 의미가 보존되고 음미되어야 하는 유산이다. 역사를 관통하면서 의미를 발하지 못하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이번에 소실될 뻔한 남대문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을 상기해 보면 문화재와 상품의 차이는 분명해질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가가치 창출만을 위한 문화콘텐츠 제작이나 공공디자인을 지원한다면, 그것은 문화라는 허울만을 쓴 소비재를 양산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폐기되어야 할 문화공해를 배출하는 것일 뿐이다.

 

그 다음으로 우려되는 것은 창조적 문화국가를 지향한다는 목적을 세웠음에도 어떤 독창적 계획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도시디자인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간 우리는 신문지상을 통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자들이 세계 곳곳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그들은 지난 겨울 음산한 유럽의 겨울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유럽의 명품도시들을 행군하며 무언가를 배우려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스페인 빌바오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에 환호하기도 하고, 비엔나에서는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에 경탄하며 그를 위대한 도시디자이너로 극찬하기도 했다. 혹은 사막에 엄청난 자본을 투여해서 세운 도시 두바이가 이상향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도시들을 벤치마킹하여 발전소에 캔디색을 입히고, 티타늄으로 된 유체적 건물을 짓고, 초고층 빌딩을 지으면, 우리의 도시들이 그곳과 같은 명품도시가 될 것인가. 해외의 성공적 문화도시를 벤치마킹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작업이 소위 각국의 명품도시의 일부를 복제하여 혼성 잡종화하는 페스티쉬의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나라 도시는 사람들이 살며 이루어놓은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각국의 모사물들이 전시되는 쇼케이스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발표된 새정부의 보고서를 보면, 해외의 성공사례들을 비슷한 외형적 조건을 갖고 있는 지역에 이식시키려는 계획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예컨대 새만금에는 두바이를, 탄광지대에는 독일 에센시를, 당인리 발전소에는 비엔나나 런던이 발전소를 개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역의 아우라를 디자인하라

정녕 독창적 문화국가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성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벤치마킹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벤치마킹하려는 지역의 독창성이 어떻게 창발하였는가이다. 그런데 독창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도시디자인과 관련해서 한 지역의 독창성은 그 지역의 풍경과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담고 있는 아우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예컨대 가우디는 지중해의 태양과 무어인들의 유산들로부터 오직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을 지어냄으로써 현재의 바르셀로나를 탄생시킨 것이다. 따라서 벤치마킹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지역의 독특한 아우라를 그 지역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의 방식으로 형상화시켰는지, 또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독특한 아우라가 과연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경제적ㆍ정책적 벤치마킹에 앞서, 또 성급한 디자인 구상에 앞서 지역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인문학적ㆍ예술철학적 탐구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땅의 아우라에 대한 이해 없이 진행되는 어떤 도시공공디자인도, 어떤 문화정책도 창조적 문화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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