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오랜 노숙생활에 지친 한 노숙인이 감옥에 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만약 스쾃(squat: 무단점거)을 알았더라면, 폭력을 휘두를 필요까진 없었을 것이다.
 

사적소유권이 최고의 권리로 인식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쾃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부조리한 주거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즉, 공간을 ‘소유’가 아니라 ‘사용’의 관점에서 보자는 얘기다. “도덕성은 항상 우리에게 가르쳐 왔다. 만약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를 가진 아비가 있다면, 그는 빵집에서 빵을 훔쳐 자신의 아이를 먹일 자격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빵에 대해서도 그렇고, 주거지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한 집안의 가장은 비어 있는 공간에 거주하기 위해 점거할 권리가 있다.”(실비아 로시노트, <삶과 예술의 실험실 스쾃>) 

스쾃을 법적 권리로 보장해주는 프랑스의 경우, 파리에만도 작업실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점거한 예술스쾃이 10여 개가 넘는다. 그 중 관광명소로 유명한 ‘로베르네 집’은 소유주가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후 약 12년 간이나 비워둔 곳이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스쾃으로 탈바꿈된 곳이다.

부동산 투기의 나라, 한국에도 스쾃은 있다. 지난 2005년, 노숙인 공동체 ‘더불어사는집’은 철거가 결정된 청계천 삼일아파트에 스쾃을 꾸려 점거투쟁을 벌였다. “어차피 아무도 안 사는 곳인데 철거되기 전까지 살면 왜 안 되는가?” 노숙인들은 결국 철거 직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2004년 8월 15일에는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주도하여 수년간 공사가 중단된 채 도심의 흉물로 방치되어 있던 예술인회관을 기습 점거했다. 이들은 ‘시민에게 문화를 예술가에게 작업실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실패한 문화행정에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예술가가 창작실을 가질 권리를 주장했다.

연구할 공간이 부족해 방황하는 원우들이여, 학내에 혹시 스쾃할 장소가 있는지 찾아보라. 빈 공간을 점거하는 행동은 합법적이진 않지만,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는 방편이고, 또 합당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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