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으로 보는 동아시아

송은희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90년대 이후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동아시아 질서는 새로운 재편 과정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체제 하의 동아시아 질서는 글로벌 레벨에서는 미·소의 대립구조가 펼쳐져 있었고, 지역 레벨에서는 일본은 미국에 편승하고, 중국은 구소련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동아시아 강대국 간의 역학구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테러전쟁으로 야기된 ‘21세기적 무질서’는 냉전 시기에 미·소간 초강대국의 대결 구도 하에 억제되고 잠재되어 있던 갈등 요소들을 새롭게 분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즉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강대국 간의 전면전 가능성이 현저히 감소한 반면, 민족·종교·영토·환경·자원 등으로 분쟁 요인이 훨씬 다양화되면서 국제질서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대응을 요구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성에 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가 동아시아의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것이다.
첫째, 동아시아 지역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갈등의 골이 깊은 곳으로 역내 불안정성의 증대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한 잠재적 경쟁관계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은 언제든지 갈등이 분출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둘째, 탈냉전 이후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 또는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대만문제를 비롯한 중국이 안고 있는 제반 문제에 개입하려는 미국과의 갈등 구조는 역내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셋째,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의 세력 강화는 일본의 안보역할 증대 및 보통국가화 추구에 맞서 역내에서의 중·일간 경쟁구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미·일 동맹 강화에 편승한 일본의 군사·안보적인 부상은 중·일간의 첨예한 갈등구조를 예고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이 영토 및 해양자원을 두고 벌이는 각축전도 점차 노골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동아시아 지역 질서는 지역세력(regional power)으로서의 중국과 일본의 부상을 주목할 수 있으며, 북한 및 대만문제로 인한 중·일 및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 그리고 국지적 세력(local power)인 남북한의 협력과 갈등 등이 중층적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결합되는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아시아는 통합적 기제를 결여한 상태에서 세력균형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빠른 세력전이 현상을 겪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역내 경제의 역동성이 자극제가 되고 또한 세계화 및 지역통합의 흐름 등에 영향 받아, 최근에는 중국, ASEAN 등이 주축이 되어 국가 대 국가, 국가 대 지역협력체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급물살을 타면서 역내 경제통합에 대한 인식이나 지역주의 움직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안보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통합적 가치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동아시아 통합체의 형성
동아시아 통합의 담론은 일차적으로 이 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내부교역의 확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동북아와 동남아를 모두 포괄하는 광역적 의미로 볼 때, ASEAN은 동아시아 통합 또는 지역주의의 선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ASEAN은 동남아시아 10개국만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한·중·일 등 동북아 주요국이 포함되는 통합의 장을 형성하는 데에는 난제가 있다 할 것이다. 
물론 'ASEAN+3'체제를 통해 동북아 국가까지 모두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거대 통합체로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동북아의 연대성 및 동아시아 통합을 주도하고자 하는 한·중·일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통합담론은 동남아의 ASEAN과 동북아의 주요국이 어떠한 형태의 연대성을 가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동아시아 통합에 관한 담론은 대체로 경제 분야에서부터 촉발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지역의 다자안보협력체제 형성 논의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쉽게 합의되기 어렵지만 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시킴으로써 평화적·외교적 해결책에 합의하고 북핵 리스크 증가를 차단하는데 주력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통합체의 형성은 경제문제 뿐만 아니라 안보·통일문제의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역내 불안정 요소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엄존하는 현실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북핵 문제의 해결 여하에 달려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은 동아시아 통합을 선점하고 주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현 시점에서 한국은 더 이상 냉전시대의 약소국도 아니며, 역사적인 조건이나 지리·지정학적인 대외 자산을 잘 활용한다면 패권국가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통합체 형성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동아시아 역내 역학구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내 패권추구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중국·일본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자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은 동아시아 통합체 또는 공동체 형성에 관한 논의가 단순히 국익의 관점에서만 접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역내 상호공존을 지향하는 통합 및 공동체 논의의 진행을 위해서 한국은 우리의 국가이익이 되면서, 동시에 지역질서 내의 안정과 평화에도 기여하는 아젠다를 창출하는 등 보편주의적인 규범 및 원칙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 과제
동아시아 지역에는 식민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호배타성, 패권주의에 대한 거부감, 주권문제에 대한 민감성 등의 지역적인 정서로 인한 역내 국가간 이질성이 존재하고 있다. 이로써 관련 국가들 간의 통합 담론의 형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탈냉전기 동아시아 지역은 안정과 불안정이라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역내 강대국 간의 세력관계 변화 가능성으로 인한 유동성과 기존의 냉전구조와 새로운 탈냉전적인 변화가 병존하는 이중성에 기인한다. 냉전시기 동아시아 지역은 냉전 질서를 반영하는 양대진영의 대립으로 규정지을 수 있었다. 이로써 비교적 안정적인 균형상태가 유지되었는데, 이러한 균형이 구소련의 붕괴로 전반적인 안보환경의 변화가 초래되었다. 따라서 힘의 공백상태로 인한 역내 국가들의 세력관계 변화는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갈등요인으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21세기 전지구적 과제인 테러, 환경, 인권, 경제 등의 문제는 국경에 따라 나뉘지 않는 바, 이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협력적일 수밖에 없으며 동아시아의 협력관계도 예외가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아시아 지역의 이질적 요소는 통합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간 협력이 어려울 때에는 반사적으로 각국 사이의 공통적 이해관계를 찾는 움직임도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을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협력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부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한 모멘텀 활용에 최선을 다하고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는 데 국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세계화와 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하는 오늘날 동아시아 통합 담론의 기초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장, 열린 민족주의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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