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최근 한국 텔레비전은 고구려 사극 붐을 일으키고 있다. 조선민족과 한(漢)민족의 투쟁사를 고구려나 발해를 통해 조선민족 중심으로 이끌어 중화주의에 물든 굴종의 과거사로부터 심적으로나마 벗어나려는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어 인기를 얻는 것 같다. 이런 근원적 요인에다 국면적으로는 동북공정, 백두산 ‘침탈’, 이어도 ‘공정’, 중국위협론 등을 우리 주류언론이 회자시키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이웃 일본은 총리가 전면에 나서 위안부 역사를 날조하고, 독도 영토분쟁화를 지속하고, 군국주의 역사를 미화하는 자유주의 사관으로 역사교과서 왜곡을 지속 및 강화하고, 정치인이 떼를 지어 신사참배에 참여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 역사·영토분쟁은 불붙기 쉬운 극단적 민족주의 정서에 기름을 붙는 격이어서 우리측 대응도 격렬해지게 되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다른 한편 동북아 5개국과 미국이라는 6자 사이 이뤄진 지난 2·13합의는 과거 60여 년 동안 한반도를 억눌러 왔던 냉전체제와 전쟁위협을 제거해 평화보장체제를 가져올 획기적인 계기를 가져 왔다. 더 나아가 동북아평화협력체제로 이행하는 본격적인 시발점을 예고하고 있다. 탈냉전평화체제기를 맞은 오늘날의 당면 과제는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이 한반도평화체제 이행기를 한껏 살려 한반도 평화체제와 나아가 동북아 공영체와 평화협력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이행기라는 역사적 국면과 접목되도록 당면한 동북아 역사·영토분쟁을 자리매김할 것이 요구된다. 이런 역사·영토분쟁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의 원초적 정서를 자극하기에 배타적·극단적 민족주의로 흘러 객관성과 보편성을 상실하기 쉽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차원의 접근이 요구된다.

아류패권주의와 대중 포위 봉쇄 전략
이 기준에서 보면 한·일 사이의 역사·영토 분쟁에는 사실과 객관성이 명확하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날조와 왜곡, 과거 제국주의와 동북아지배의 미화, 새로운 미일동맹과 일체화로 새로운 동북아지배 기도가 맞물려 있다. 한마디로 미·일동맹의 극대화와 이에 따른 미·일 중심의 동북아패권 기도가 저변에 깔린 배타적 민족주의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기형적으로 표출된 것이 일본의 역사·영토분쟁화이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일본이 러시아와 북방도서, 중국과의 댜오위다오(釣魚島), 한국과 독도 등의 영유권 분쟁을 함께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부시정권 이후 일본의 영토분쟁이 두드러진 점은 부시정권의 일방적 패권주의와 이에 편승한 일본의 아류패권주의가 결합되면서 배타적·지배적 민족주의로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본의 행보가 현실화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과제다.  ‘대마도 영유권’ 주장과 같이 배타적 민족주의로 덩달아 일본을 자극하는 대응방식은 오히려 평화체제이행기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중국과의 역사·영토분쟁은 사실과 객관 차원에서 일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동북공정은 대략 96년경에 시작됐다. 이 시점은 미국의 ‘동아시아전략보고서’가 나와 미국이 탈냉전 후 구축할 동북아질서의 근간이 되는 미·일동맹론, 중국위협론, 미·중 신냉전론을 대두시킨 시기와 일치한다. 이 중국포위봉쇄전략에 대응해 55개의 소수민족을 가진 중국은 접경지역 영토분쟁 해결과 소수민족 내적 안정 등을 중요 과제로 설정했다.
또한 92년 한·중수교로 동북3성을 방문하게 된 한국인이 내건 ‘만주는 한국 땅'이라는 플래카드, 백두산 천지에 등장하는 대자보 등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가 중국 땅에서 버젓이 발로됐다. 동시에 북한의 극심한 경제-식량난과 더불어 94년 미국의 대북침략전쟁 초읽기라는 급박한 구도 속에 한·미 합작의 흡수통일 기운이 풍미했다. 이 경우 미군이 압록강까지 배치된다는 중국의 위기의식은 고조되기 마련이다.
이에 95년 5월 리펑 총리가 한국인들의 언행을 자제시켜 줄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고, “통일 이후 한국은 반드시 간도문제를 비롯한 영토문제를 제기할 것이므로 중국은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중국 외교 자료들이 분석해 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구도 속에 중국 측의 극단적 민족주의가 일부이긴 하지만 ‘고구려는 중국지방정권’이라는 식으로 나타났다. 일본과는 달리 중국의 동북공정은 미국의 대중 포위봉쇄정책 출발, 미·일동맹 강화, 극단적 한국민족주의 발로, 북한붕괴와 통일한국이 가져올 국경분쟁의 방지 등이 결부된 수세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최신 보도에 의하면 중국이 한국의 ‘고구려 드라마’에 맞서기 위해 만든 대형 사극 ‘설인귀’에선 고구려를 멸망시킨 설인귀의 위용이 없을 뿐 아니라 고구려가 빠져 중국시청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한다. 이같이 포용적 민족주의를 견지하고 앞의 배타적·극단적 민족주의를 배격해야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이행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일본에는 강력한 대응을, 동북공정에는 외교적 대응을 삼가는 접근은 이런 기본성격의 차이에서 오는 올바른 대응이다. 문제는 “중국은 자주국방의 대상이 아니냐”는 식으로 중국 흠집내기를 더욱 조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나 한나라당과 같은 접근에 있다.
실제 중국의 영토분쟁을 사실적으로 보자.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중국은 전향적으로 국경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린위선 이린위반(以隣爲善, 以隣爲伴)’ 정책으로 러시아와 아무르 강 지역 3개 섬의 전체영유권에서 물러나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했고, 인도나 카자흐스탄과도 ‘일보 양보'로 타결짓고, 남사군도 문제도 베트남과 공동 자원개발로 해결했다. 또 중국은 통일 이후에도 북한과 현재 국경선을 최종국경선으로 한다는 협약을 체결했고, 남한에게도 요구했으나 거절당해 혹시 발생할 미래의 국경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계획은 절반만 성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국의 냉전분단세력이나(친미예속주의자)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북한 유사시 중국이 북한 땅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지니고 있다.”고 동북공정을 오도하고 있다.

과잉 민족주의를 넘어 열린 민족주의로
사실 왜곡도 도를 넘었다. 지난 장춘 아시안게임에서 쇼트트랙 한국팀의 ‘백두산 세리머니’는 중국이 만주족의 성지인 창바이산(長白山)에서 성화불씨를 얻고 이 산을 선전한 것을 마치 백두산의 중국영토화 기도처럼 왜곡한 데서 발생한 결과다. 백두산 이쪽은 우리 민족의 성지로 우리의 영유권이 행사되지만, 저쪽은 창바이산으로 청나라의 성지이면서 중국 영토이다. 이런 기초 사실조차 모르는 어린 선수들이 극단적 민족주의자에 이용당한 셈이다.
최근에는 ‘이어도 공정’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이 섬은 ‘물로야 뱅뱅 돌아진 섬’이라는 ‘이어도 사나’라는 제주민요에 나오는 전설의 섬으로 해양법 상으로 섬이 아닌 해중 암초이고, 03년 한국 해양기지가 설치돼 있으며, 한·중 간  배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의 경계가 합의되지 않고 있으므로 영유권 대상이 될 수 없다. 영유권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굳이 분쟁대상화하려는 것은 동북아평화협력체 이행에 걸림돌만 될 뿐이다.
이런 왜곡과 선동에는 주류 언론·정치세력·지식인 등의 대미추종주의와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지배적 패권주의라는 신제국주의 찬양 고무가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은 일본 역사ㆍ영토 분쟁화에는 마지못해 지면을 일부 할애하고, 미국의 평택기지 전쟁 기지화 등에는 침묵과 외면 더 나아가 찬양으로 일관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에는 극단적 민족주의 행태로 길길이 날뛰는 대응을 일삼고 있다. 이런 다각적인 양상 속에 민족의 자주,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 공영평화협력체라는 역사장정을 위해서는 극단·배타·지배 등과 결합된 수구진영의 과잉민족주의도 금물이거니와 민족 비하·무용·환원·배척주의 등과 결합된 비자주적 진보와 냉전수구 친미세력이 동거하는 과소(탈)민족주의와도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제국주의에 항거해 민족의 독립과 통합과 자주를 쟁취하기 위한 저항민족주의를 계승·승화한 포용·열림·보편 등을 공유한 민족주의야말로 평화체제 이행기라는 역사적 맥락이 요구하는 올곧은 민족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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