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 : 소비문화

박선영 / 사회학과 공간연구팀 아작스페이스

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팔꿈치와 무릎이 닿는 부분의 옷 자리에 천을 덧대어 기워 입은 옷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긴팔, 긴바지를 입고 활동을 하다보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헤지는 부분인 팔꿈치와 무릎은 재질과 색깔이 다른 옷감들로 덧대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근래에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는 기워 입은 것을 보기 힘들다. 그런데 양복점에서나 아이들의 옷을 파는 상점에서 기워진 옷을 간혹 볼 수 있는데, 기워 입은 옷이 아니라 이미 기워진 옷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 기워 입은 옷은 그 자리가 헤지고 구멍이 뚫려 다른 천으로 가려 옷을 재활용한 것이다. 반면 이미 기워져 판매되는 옷은 옷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천을 덧댄 부분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덧댄 부분이 옷의 포인트로서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옷을 재활용하지도, 필요에 의해 소비하지도 않는다. 이제 옷의 역할은 그것의 사용가치에 있기보다는 특정한 스타일을 소비함으로써 구성되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기호가 된다는 점에 있다. 이 같은 소비양식의 변화는 후기자본주의의 유연적 축척체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탈근대의 주요 동력으로서의 후기자본주의는 자본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정서, 행동방식을 변화시켰다. 즉, 기능과 품질에 의한 합리적인 소비는 이미지와 상징의 소비로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소비를 위해 소비영역은 심미적인 특징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패션과 상품, 생산과정과 소비과정의 변화를 통해 장기적인 소비계획을 쓸모없게 만들고 이미지와 광고를 통해 소비를 촉진하는 등 교환가치로서 소비문화를 가속화시켰다. 또한, ‘실질적인(전혀 가상적이지 않은)’ 소비를 촉진시키는 탈근대의 판매 전략은 소비공간의 상품화 전략을 통해 소비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기본적으로 소비공간은 상품의 판매와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소비공간은 탈근대적인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전략적으로 구성되어지며, 우리는 이러한 소비공간을 살펴봄으로써 소비주체의 행위양식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추적할 수 있다.

탈근대적 소비공간과 소비의 재구성


탈근대적 소비공간의 주된 특징은 문화를 상품화하여 사람들의 유입을 촉진시키고, 이미지와 상징들로 가득 찬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하여 소비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삼성동의 코엑스몰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에 위치한 센트럴 시티, 상암 월드컵 경기장과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스카이 시티)의 복합 공간 등을 통해 탈근대적 소비공간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소비공간들은 문화적 재화와 다른 상품들을 한 곳에 배치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재화, 서비스, 경험의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이곳들은 주로 영화관, 오락실, 음식점, 대형서점, 음반매장, 각종 브랜드의 의류 매장 등 온갖 놀이거리와 먹을거리, 소비거리들을 한 곳에 모아둠으로써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문화적 기능과 소비의 기능을 결합시켜 복합소비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탈근대적 소비공간인 복합소비문화공간은 상품의 판매와 소비만의 단일한 기능을 수행하던 근대적 소비공간과는 다르다. 근대적 소비공간의 대표적인 예로 백화점을 들 수 있다. 근대적 백화점은 효율적인 상품 판매와 소비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즉 구획적이며 질서정연한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그 구조는 어디에나 같다. 이와 비교해 볼 때 복합소비문화공간은 비합리적이며 비규칙적인 공간 구조를 이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수직적인 구성보다는 수평적인 구조로 배열되어 있으며, 출입구는 일관성 없이 배치되어 미로를 걷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상품은 기능보다는 시선을 끌 수 있도록(그 종류와 기능에 상관없이) 소비공간 전체를 장식하여 사람들의 비계획적인 소비를 만들어 낸다.
통합적이고 획일적인 구조를 보이는 백화점은 소비를 조장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복합문화공간은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혹은 은밀히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이미지들은 사람들 사이의 상대적인 차이와 차별 등을 상쇄시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문의 입구부터 부드러운 백색의 대리석으로 일관되게 깔려 있어 우리를 위압하는 백화점을 상상해보라. 혹은 번쩍이는 금빛으로 칠해진 묵직한 백화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와는 달리 복합소비문화 공간에서 우리는 어지러이 장식된 상품들 그리고 미로 같은 길과 함께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 돌아다닌다. 물론 걷는 것뿐만이 아니라 문화를 즐기고 음식을 먹고, 예쁜 옷들을 구입하고, 그 무엇인가에 앉아 또 그 무엇인가를 만지고 움직인다. 이와 같이 생산공간인 일터와 휴식공간인 집을 제외하고 우리의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공간인 소비문화의 공간은 자본주의의 탈근대적 공간배치를 통해 우리의 소비문화를 재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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