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면서도 두려운 순간이었다. 노동절 기념으로 대학로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리던 날, 중대신문 기자라는 신분으로 처음 인터뷰를 하던 날 이었다.
학생기자라는 것에 매력을 느낀 것도 각 분야의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이유였기 때문에 처음 만나게 될 인터뷰 상대가 무척 기대되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미얀마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소모두씨 였다. 그는 미얀마에서 대학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고 했다. 미얀마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곤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을 남겨둔 채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 소모두씨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가 추락사로 사망한 친구이야기, 집회가 있을때마다 밴드로서 참여해 기타를 치는 이야기, 소름끼치는 한국 사람들의 무관심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는 고작해야 얼마 안되는 시간을 할애해 들은 것으로 소모두씨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했다. 하지만 내가 기사에 녹여낸 그는 하나의 인격체인 ‘소모두씨’가 아닌 내가 이제껏 색안경을 끼고 바라 보았던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에 불과했다.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허무하고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인터뷰에 관한 조선일보 현직기자의 특강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백지로 덤벼라’. 인터뷰강의를 시작하면서 강사가 처음 던진 말이었다. 취재를 하기 전에 사전정보를 조사하지 않거나 배경지식을 습득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 인터뷰 상대가 성직자이건 살인자이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장애인이건 똑같은 마음으로 하얗게 바라보는 것, 편견을 가지지 않고 인터뷰상대를 대하라는 말이었다. 순간 소모두씨와 인터뷰를 하기 전 ‘고달프고 외롭고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라는 생각으로 무장한 채 객관적이고 정돈된 시각으로 인터뷰에 임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스쳤다. 며칠 동안 느꼈던 괜한 괴리감과 허무함은 나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 소모두씨를 만난다면 붕대가 감겨져 있던 손 말고도 어깨에 걸려있던 기타나 그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같다.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소모두’씨의 이야기를 말이다.
무심코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들에게 더 상처가 되진 않았을는지. 편견 없는 우리의 시각이 아프고 힘든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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