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술작품의 시간과 인간의 상상력

 


정용도 / 미술평론가


현대미술에서 동영상 미디어 작품을 이야기 할 때, 매체의 특성상 우리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시간은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실제 시간과는 구분되는 작품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작품 자체의 시간, 작품자체의 시간과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시간과의 상대적인 관련에 의해 추론될 수 있는 두 가지 커다란 시간에 대한 인식의 구조틀이 발생한다. 그런데 작품 자체의 시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일상의 시간과 장소와의 관련 속에서 작품이 거주하게 되는 시간은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형식으로 주조되는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시간의 개념은 뉴미디어 아트 작품을 논의하면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실재세계 모방과 재현의 전통적 매체


미디어 아트 작품에서 이렇게 시간이 복잡한 형식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은 특히 21세기 들어와서 무작위적 조합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작품 제작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효과의 면에서 기존의 단계적인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일정한 양의 인풋(input)이 있으면 순차적인 과정을 거쳐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본질적으로 아날로그적인 존재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미술작품에서 시간은 평면 위에 과정적으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바로크 미술에서 보듯이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이미지의 역동성을 만들어 왔다. 이런 경우 결정적인 순간은 시간이 아니라 운동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매체를(나는 여기서 뉴미디어 아트 이외의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작품들을 전통적인 매체라고 부를 것이다) 이용하는 미술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실재 세계를 모방하는 재현성(representation)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전통적인 매체의 미술작품들이 재현을 그 존재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것은 인간이 존재성을 영위하는 공간을 대주제로 삼아 의미를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는 개념으로부터 산출되는데, 개념은 일정한 주제를 상정하고 그 주제가 생산하는 내러티브를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적인 예술작품의 내러티브는 정적인 상황(고착된 이미지)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정신적인 반응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뉴미디어 아트의 매체는 그 같은 참여를 정신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존재와 결부시킨다. 이것을 우리는 작품과 관객이 물리적으로 서로 교류하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 장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미디어 아트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매체의 미술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판단, 혹은 비판적 거리가 아닌 우리 감각의 반응에 더욱 충실한 예술적 동기유발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이 전시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미술작품의 대주제(grand thesis)가 공간에서 시간으로 변이되면서, 정적인 참여에서 동적인 참여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미술은 지적 관심의 영역이 아닌 감각적 즐거움의 영역으로 전이되었다. 즉 지적인 게임의 상황으로 우리의 활동이 인도되는 것이다. 이것을 토마스 쿤(Thomas S. Kuhn)의 패러다임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면, 우리 삶의 패턴이 뉴미디어 아트라는 상황을 통해 예전과는 다른 방식의 미학적 활동과 관련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축적된 예술적 전통을 통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이 뉴미디어 아트라는 이름아래 새롭게 해석되고 설명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예술적 지형의 모양새는 의미가 창조되는 정신의 계기를 통해 유의미한 미학적 형식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이제는 더 이상 예술 활동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은 정신의 흐름과 동종의 형식을 보여준다. 작품이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경우 관객들은 어떤 하나의 특정한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으로 지각되는 연속적인 이미지에 감각적이고 정신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런 경우 몰입은 참여의 형식으로 객관화 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행위들은 지금껏 다분히 주관적인 활동으로 간주되어 왔다. 즉 타자와 나눌 수 있는 객관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미의식을 공유하고 고양시키는 것이 예술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전제조건처럼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뉴미디어 아트는 시간적 예술의 특성상 개인의 주관적 반응 - 물론 감각적인 반응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 의 지평이 더욱 중요한 예술 감상의 형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개인적인 상황을 하나의 보편적인 예술적 상황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상황을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학자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개인들의 특성을 하나의 섬으로 설명하면서 현대의 문화가 고립된 개인, 자기 충족적인 개인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한다. 이런 이질적인 특성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성향은 TV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매체들에 의해 더욱 촉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시간예술의 미학적 개념은 관객과의 소통


대중매체적인 기원을 갖는 뉴미디어 아트의 존재론적 특성은 속성상 비예술적 특성을 포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미 예술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었고, 신세대의 예술작품 수용자들은 예술작품과의 관계를 시간적 패러다임 안에서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동안의 전통적 매체의 예술가들이 공간적 환영의 세계를 통해 예술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고자 했다면, 현대 뉴미디어 아트 예술가들은 환상의 창조를 그들 작품과 작가로서의 정체성 수립의 중요한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시간예술의 중요한 미학적 개념은 더 이상 구도, 형태, 색채 등등의 것들이 아닌 가상현실, 시뮬레이션(보들리야르의 원본 없는 실제)과 같은 일상의 차원과 좀더 포괄적인 형식으로 관계가 가능한 방향에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가 영화가 민속예술에서 기원하고, 인간이 자신의 환경과 닮은 움직임을 미술작품에 부여하기 위해 끝없이 상상하고 실천함으로써 영화가 탄생했다는 언급을 통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의 염원이 시간적인 예술이라는 구체적인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의 근거가 된다. 게다가 21세기 뉴미디어 아트는 더 이상 관객의 지적 반응이 아닌 감각적인 참여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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