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공포 ⑤]


그러나 세계적으로 그러한 국민주권이 이념에 맞게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더욱이 우리의 현대사는 그 점에서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국민주권의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고자 하였으나 그 탄생부터 이미 주권의 분열과 예속 그리고 사유화(私有化)라는 중병을 안게 되었다. 일제의 상대는 우리 민족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라는 연합국이었고, 일제의 패배는 곧 한반도의 관리권이 우리 민족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수중으로 넘어감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소의 세계사적 대립 속에서 한반도의 주권은 결정적으로 분열되었고, 우리 민족은 자주적이며 통일된 국가건설에 실패하였으며, 남과 북의 지배세력은 외세의 후원과 지지 하에 국가를 자신들의 전리품으로 만들었다.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역사

이처럼 한반도의 주권이 ‘분열과 예속 그리고 사유화’라는 고통스러운 삼각의 덫에 빠진 결과, 폭력의 제도화라는 국가성립의 과제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국민주권의 일반성과 보편성은 다만 장식이었으며, 주권은 적나라한 국가폭력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50년 한국전쟁과 전후 이 땅에서 자행된 엄청난 양민학살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전쟁 이후 북한에게 미국이라는 존재가 그러하듯이, 남한 정부에게 북한의 침략은 국가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인민의 이익과 등치 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공포(恐怖)’가 활용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위치하였고, 정권안보는 국가안보와 동일시되었다.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는 군사정권을 불러들인 것은 이러한 전도(顚倒)된 헌정질서의 필연적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공포의 법’과 ‘법의 공포’로 점철되었으며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는 그러한 공포로부터의 해방의 도정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군사정권은 국가보안법에 더하여 반공법을 제정하고 언론인 조용수를 사형시키는 등 4·19 민주주의의 열정을 다시 ‘공포’의 냉동고 속으로 유폐시켰다. 베트남의 통일과 ‘닉슨 독트린’에 자극을 받은 박정희 정부는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억압을 가중하고 사회안전법을 제정하여 국가보안법 사범을 격리 수용하며 사상전향을 강제하였다.
박정희 사후 군사정권을 계승한 신군부 역시 북한의 위협을 내세우며 광주의 제노사이드(genocide)를 일으켜 주권을 찬탈하였으나, 그 근거가 변변치 않음을 알았는지, 곧 이어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의 소란을 일으킨다.

‘깡패’로 표현되는 사회의 폭력을 국가가 일소하여 ‘정의(正義)의 공포’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주권을 사유화한 군사정권에 의한 국가폭력의 야만성을 실증하는 것에 그쳤다. 사회보호법과 그에 따른 청송감호소도 애초에는 삼청교육대의 구금자들을 계속 가두어 두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주권의 결함과 국가폭력의 상흔은 현재까지도 여전하다.

우리의 현대사는 전쟁의 공포가 온존하는 한, 국가폭력의 발호와 인권의 희생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으나, 그 교훈은 공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나고 냉전의 세계체제도 해체되었는데, 한반도에는 오히려 제2의 한국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반전과 평화의 물결이 공포를 떨쳐내고 생명의 꽃을 피울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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