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토론

김보현 /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필자는 이 글에서 지면 관계상 대중독재론에 대해 두 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대중독재 개념의 적실성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탈-근대주의적 문제설정의 진정성 문제다.
대중독재론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그 담론 혹은 패러다임의 ‘간판’인 대중독재 개념에 존재한다. 대중독재론자들은 박정희 정권이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 위에 성립·존속하였다고 주장하며, 그런 의미에서 대중독재였다고 규정한다. 전자가 첨예한 논쟁 대상이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논외로 두자.
‘독재’ 개념의 핵심은 행위 ‘주체’와 ‘대상’의 구분, 그리고 행위의 ‘일방성’이다. 아예 안 쓴다면 모를까, ‘독재’ 개념을 사용하여 역사와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한에서 그 같은 개념적 요체가 외면될 수는 없다. 대중독재론자들의 주장처럼 박정희 정권이 광범위한 대중들의 동의와 참여 속에서 존립하였다면 그 정권을 최소한 ‘독재’라 부를 수는 없다. 대중독재 개념에서 내용적으로 대중들은 통치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다시 말해 대중독재 개념은 그것이 가진 언표와 별개로 민주주의의 고전적 정의인 ‘통치자≒피치자’인 상황을 지칭한다. 그렇게 볼 때 대중독재론자들은 대중독재 개념에 의존하여 근대 정치체제의 한 형태로서 ‘독재’가 아니라 그 다른 한 형태인 ‘민주주의’를 논구하는 것이며, 이 같은 맥락에서 실제로는 박정희 정권을 정치적 독재가 아니라 대중민주주의의 특수 사례로 포착하여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가 작년 11월 학술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집담회에서 자신의 입장과 가장 근접하는 외국 연구자로 조지 모스를 말한 바 있는데, 바로 이 모스가 파시즘을 “대중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시사적이다. 대중독재 개념은 해당 논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기표이며 그들의 정체성을 자신들 스스로에게나 독자들 혹은 청중들에게 아주 혼란스럽게, 본래의 그것과 다르게 대표시키고 있다.  

근대성으로의 회귀
대중독재론은 ‘근대주의 비판’의 시선으로 역사와 현실을 이해하고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난 수 년 동안 대중독재론 측이 논술한 ‘박정희 시대론’을 읽다 보면, 역설적이게 근대주의를 지양하겠다는 언명과 상충하는 함의를 대면하게 된다. 그들의 ‘박정희 시대론’은 당대에 구체화된 근대화 기획의 내적 긴장들과 모순들 그리고 그 귀결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권력블록의 근대화 기획은 별다른 제동이 걸리지 않은 채 대중들의 일상적 삶 안에서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애초 의도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 시대’는 대통령 박정희 혹은 국가가 구상하고 구현시킨 ‘하나의 질서’로 비쳐진다. 대중독재론자들이 말하는 ‘박정희 시대’에서 ‘주체(화)’는 오로지 하나, ‘국민(화)’만이 존재한다.
대중독재론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는 단지 박정희 정권기의 ‘사실관계’ 여부를 따져 묻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연구의 일반적 규범 차원에서 ‘단순 분석’과 ‘복합 분석’을 대립시키는 식의 문제제기가 아니다. 나는 대중독재론 측의 ‘박정희 시대론’을 읽을 때마다 연이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근대주의를 넘어서자 하는 사람들이, 근대주의 기획의 구체적 역사와 현실 안에서 다만 국민국가의 완성 추이와 자본논리의 전일화 경향밖에 보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한 ‘완성’과 ‘전일성’은 실재하는가. 근대주의 기획의 역사-특수적 형태들 내적인 ‘비틀림’과 ‘갈라짐’, 출몰하는 ‘절규’와 ‘탈주’의 기도 등을 발견할 수 없다면 탈-근대주의라는 비전은 애초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대중독재론자들은 무엇보다 역사와 현실에 관한 논의에서 결국 자신들의 비판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근대성의 물신화’를 조장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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