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호 [이슈] '이문열 책 반납 장례식'소묘
보수 언론의 '궁색한 흠집내기'

김영균/오마이뉴스 기자

“더구나 10세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이씨의 책표지를 모아서 만든 ‘영정’까지 들게 했다는 것은 나이 어린 그 소녀에게도 해선 안될 일을 한 것일 뿐더러, 이런 류의 음습한 ‘조직적 스토킹’이 이제 때와 장소를 안 가리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조선일보, 11월 6일자 사설) 지난 11월 3일 이문열씨의 작업실인 ‘부악문원’ 앞에서 벌어진 ‘책 장례식’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적 관점의 인사들은 이를 두고 “다수에 의한 소수의 억압”이니 “그래서 ‘홍위병’”이니, 서로 맞장구를 치며 비난하기 바쁘다. 그러나 ‘책 장례식’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이런 해프닝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잘못 알고 있는 듯 하다. 또 3개월 동안의 책 모으기 과정에서 일어난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당일날 벌어진 ‘사소한 일’을 꼬투리 삼아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누가 ‘스토킹’을 당했나

위의 사설처럼, 조선일보는 ‘책 장례식’을 두고 섬뜩함마저 느끼게 하는 ‘조직적 스토킹’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조선일보가 표현한 ‘스토킹’이라는 용어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을 함축한 말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 의미는 조선일보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애초 ‘책 장례식’은 이문열의 끈질긴 ‘스토킹’에 그 원인이 있었다. 지난 7월 시민들의 ‘언론개혁’ 열망이 한참 높았을 때, 이문열은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조선, 7월 2일)라는 시론을 통해 ‘안티조선’ 시민들에게 ‘스토킹’을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이었고, 아주 거대한 족벌언론의 권력을 등에 업은 채.그 뒤 이문열은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동아, 7월 8일), “나는 친일문제도 관대하다?”(조선, 7월 13일) 등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언론개혁’을 따라 다니며 끈질기게 괴롭혔다. 최근에는 소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까지 동원해 세무조사를 ‘언관(言官)에 대한 탄압’으로 비꼬았다. 조선일보의 표현대로 이번 일이 ‘스토킹’이라면, 그 주체와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스토킹을 당한 것이 과연 작가 이문열이었나. 아니면 ‘언론개혁’을 원하던 시민들이었나.

‘전라도 발언’은 어디 가고 ‘어린아이 영정’만 도마 위에

조중동은 또 사설에서 보듯 ‘순진한’ 어린아이에게 ‘영정’을 들게 했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켜 이번 사건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 했다. 그러나 ‘아이’가 영정을 들었다는 것, 조중동이 온갖 기사와 사설을 통해 초점을 맞춰 비난한 그 일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이었다. 그보다 더 ‘중대한 일’은 따로 있었다. 이문열은 ‘책 반납’이 있기 며칠 전, 부산에 내려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산 시민들에게 일러바칠 것이 있어 왔다. 책 반납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부산 사람’이 아닐 것이다.”바로 다음날, 이문열은 책 반납을 주도하고 있는 화덕헌씨를 만나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향이 어디냐”, “대구다”, “그럼 부모님 고향은 어디냐”, “경북 선산, 경남 진양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고향은 어디냐”, “모두다 경상도 토박이다”, “그럼 당신들 배후에 ‘전라도’가 있을 것이다.”  책 반납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라도’로 몰아부치는 이문열의 발언은, 그의 생각을 의심케 하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그러나 책 반납을 ‘홍위병의 준동’으로 매도하는 조중동은 이문열의 전라도 발언에 대해 한 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다만 ‘아이가 영정을 들었네, 순진한 아이를 이용했네’ 하며 호들갑을 떨었을 뿐이다. 이문열의 전라도 발언과 아이가 영정을 든 사건, 과연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 것인가.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사 기자들과 데스크들이 ‘상식’을 가진 사람 누구나가 판단할 수 있는 이 문제를 몰랐단 말인가. 책 반납이 끝난 지금, 시민들은 조중동 의 ‘왜곡’보도에, 또 그들의 궁색한 ‘아이 잡고 늘어지기’에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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