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호 [Code읽기] 우리 아내들의 이름은 생활미?
- 만화 '비빔툰'을 보고

성은미 편집위원
  
한겨레신문’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 ‘정다운’과 ‘정겨운’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문을 펴면서 나도 모르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남의 집 이야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비빔툰 가족의 가정사는 솔솔한 기쁨을 준다. 내 주위의 많은 남자들은 비빔툰을 보면서 ‘장가가고 싶다’가 아니라 ‘애 낳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비빔툰의 주요 줄거리가 ‘정보통’과 ‘생할미’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보다는 ‘정다운’과 ‘정겨운’을 키우면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들과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실제 정보통과 생할미의 삶은 때때로 너무 현실적이라서 애매한(?) 웃음을 짓게 한다. 최근 생할미는 시어머니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정다운, 정겨운을 뒤로한 채 예전에 공부하던 일어를 다시 배우겠다고 나선다.

요즘 남자 정보통은 여자도 자기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생할미 앞에서 멋진 폼을 잡았다. ‘일단 마음 정한거니까 끝까지 해야돼.’ 그러나 화장실에 들어가 고민하는 정보통이나, 시부모에게 얘기할 것을 두려워해 정보통 대신 시어머니를 침대 옆에 눕혀놓고 있는 생할미나, 이제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예감하고 있다. 전쟁은 시작됐다. 생할미의 수업이 있는 날 정보통은 야근을 하는 동료와 집까지 따라오는 부장의 손을 뿌리쳐야만 했고, 더 이상 생할미 앞에서 멋진 폼 잡기를 포기한다. 늦게 들어온다는 정보통의 전화는 생할미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정보통이 나쁜 놈이라서 늦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나 제 시간 퇴근은 모두 어려운 법이다.

근로기준법이 있다지만, 상사눈치에 말 한번 못 건내는 것이 사실이고,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된다는데 정말로 5일만 근무할 수 있을 것인지 그 가능성조차 희박한 것인지 의문이다. 정보통도 나쁜 놈 취급받는 게 억울하다. 문제의 핵심은 정다운과 정겨운을 누가 키울 것인가이다.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모성애를 과시하는 생할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생할미의 공부는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미 낳은 아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키울 것인가. 흔히 주위에서 보듯이 시어머니나 장모님이 주요 공격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네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는 것인데, 언제까지 내 일 하겠다고 우리 앞 세대의 여성을 부려먹을 수는 없는 법. 스웨덴처럼 보육시설이 보편화돼 있고 누구나 공짜로 믿고 맡길 수 있다면, 지금의 정보통과 생할미의 싸움은 반으로 줄지 않았을까.러나 이야기는 더 나아간다. 정보통은 생할미의 공부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상의 문제를 ‘참는다’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참는다’는 또 다른 이기심의 표현임을 깨닫는다.

요즘 남자들은 정보통처럼 ‘참는다’가 이기심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까. 동등하게 가사분담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남자들도 세상에서 그래야 한다고 하니까,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러마’라고 대답하고 가사노동의 일부를 부담한다(그것도 하면 다행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기는 아내를 ‘돕는다’라고. 왜 남편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아내라 불리는 자들을 돕거나 참거나 배려하는 것일까.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결혼하지 않는 것, 이것이 선택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도움 받고, 배려 받는 인내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아내의 이름은 생활미(生活美)의 변형인 생할미가 아니라 다른 새로운 이름을 얻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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