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특집기고] 위기에 처한 인터넷 누가 판단하는가

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본 글은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진보언론이 함께 하는 ‘인터넷의 자유를 위한 동시다발 글쓰기’ 캠페인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배권력의 인터넷 재구조화에 맞서 인터넷의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 확산을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편집자주>

불과 석달 만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인터넷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가 계속되었다. 자살 사이트 이후에는 폭탄, 병역기피, 화염병 사이트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제는 인터넷의 ‘불건전’하고 ‘반사회적’인 경향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다. 또 어떤 충격적인 사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와 경찰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가 되는 사이트들을 신속하게 폐쇄하고 운영자를 체포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봉쇄하겠다며 10만8천건에 달하는 ‘불건전 사이트’ 차단과 인터넷내용등급제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바로 지난해에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드높았었다. 극단적인 사례들이 연일 등장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옹호가 급속도로 제 목소리를 잃어갔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위기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수 없는 상황, 그 자체가 우리의 위기를 증거한다. 자살 사이트 사건이 처음 보도된 이후, 언론과 경찰은 습관처럼 자살의 원인을 자살 사이트에서 찾기 시작했다.

불온·불법·유해에 대한 자의적 기준
10대가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인터넷 혹은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인터넷이나 컴퓨터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청소년은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이 인터넷 때문이라는 말은 실제 원인을 밝히는데는 무능하다. 자살 사이트 사건 발생 이전에는 경제난과 실업으로 인한 자살 증가가 이미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논의되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의 자살이 입시 부담과 왕따, 학교 폭력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성의 목소리도 높았었다. 하지만 자살 사이트 이후 이런 모든 토론은 주변화되었다.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인터넷이 자살의 원인으로 판정되고, 검·경찰이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이 정당화되는 각 과정 사이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었다.

일단 ‘정보’와 ‘행위’가 쉽게 동일시되었다. 자살 사이트와 실제 자살 방조는 다르다. 안락사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쓰는 것이나 읽는 것, 토론을 하는 것조차 불법으로 간주된다면 우리는 허용되는 것 이외에는 표현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핵심 문제이다. 또 사람에게 가정이나 사회보다 자살 사이트가 갑작스럽지만 더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진단은, 근거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분석은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실제 원인을 밝히는데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국 한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인터넷은 불온하고, 검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자살사이트가 폐쇄된 것은 사이트 개설이 ‘불법’한 행위이거나 ‘청소년유해’한 행위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온’하기 때문에 폐쇄되었다(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의 단속’). 영화, 음반, 서적에 대한 규제는 불온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던 과거로부터 오랜 투쟁을 거쳐 불법매체와 청소년유해매체로 분화해 온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물론 국가보안법의 ‘불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청소년유해매체’는 자의성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가장 첨단의 매체라는 인터넷이 불법도 유해도 아닌,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불온’의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인터넷성인방송국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알려진바와는 다르게, 청소년보호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이들은 불온하기 때문에 처벌되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지금 위헌적 법을 정당화하고 검열에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표현을 허용하고 어떤 표현을 제한할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무엇이 불온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청소년보호의 문제가 아니며 인터넷만의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 그 자체이다. 그들이 차단하고 있는 것은 청소년유해매체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권리이다. 다시한번 강력한 호소가 필요하다.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들 모두, 스스로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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