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호 [시사기획] 한국사회지배담론 분석 : ① 문화예술작품의 검열과 담론 형성
2003-04-04 13:36 | VIEW : 3
 
97호 [시사기획] 한국사회지배담론 분석 : ① 문화예술작품의 검열과 담론 형성

총체적 검열의 시대, 금기는 작동되고

김태연 / 시인, 영화평론가


올해 들어 연이어 발생한 문화예술계의 일련 사건들, 즉 소설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국가 권력의 도마에 오르면서 취해진 법적 제재 조치는 결코 낯선 현상이 아니다. 하품 이날 정도로 자명한 현상이 되어 버린 국가 권력 기관의 ‘검열’을 기반 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행정 기관의 행정적인 ‘검열’이 아닌, 사법 기 관의 사법적인 ‘간섭’이라는 데 이번 사건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과도한 성 표현물에 대한 법적 제재는 어느시대에나 존재해 왔으며, 최근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성개방 풍조와 맞물린 가운데, 국가 권력의 이번 조 처는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헌법 제21조 제1항 표현의 자유와 헌법 제22조 예술의 자유를 옹립하 는 차원에서 해당 작가 및 문화예술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습도 결코 낯설지 않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삼는 매체이기 때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표현 어휘도 매체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인 모습도 어제, 오늘의 풍경이 아니다.
검열, 권력의 치졸한 게임

항상 그래 왔지만, 이번 사건의 여론 조성 주체는 국가 권력이라는 사실 또한 너무나 자명하다. 그들은 헌법 제21조 제4항(침해조항), 형법 제 243 조 및 제 244조(음란물 판매 및 제조에 관한 건)를 들먹이며, 문화예술작품 에 대한 사후 심사의 명목으로 음란, 폭력성 여부와 공공 미풍양속에 문제 가 되는 부분을 쪽집게처럼 일방으로 발췌하여 만든 보도자료를 언론에 공 급했다. 이는 국민의 눈을 가린 채 일방으로 조성된 여론을 등에 업고, 자 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국가 권력의 치졸한 소치였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일방적인 보도자료를 덥썩 물었고, 신바람이 난듯 보도했다. 더구나 80년대식의 골아픈 이데올로기의 사상성 문제가 아 닌 이른바, 음란성과 폭력성에 대한 보도가 아니던가. 방송이나 언론들은 앞다투어 청소년 성범죄와 성풍조의 개방을 다루었고, 중요 부분은 모자이 크화하여 국민들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덕분에 이 승희 누드집 <버터플라이>에서 중요 부분을 가렸던 나비 문신(?)은 엄청 나게 팔려 나갔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문화예술작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성 표현 및 폭력성에 대하여 국가 권력의 개입, 즉 국가 권력 기제로서의 ‘검열’에 기반을 둔 법적 제재 조치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혹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침해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국민 기본권의 문제로 확산된다. 특히 작년 연말, 국회에서 새롭게 통과된 청소년 보호법과 맞물린 가운데, 최근 청소년 탈선의 표본으로 부상한 <빨간 마후라> 사건과 관련, 문화예 술작품에 대한 ‘마녀사냥’- 최근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비롯한 - 이 사회 일각에서 조차 공공연하게 횡행하는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나아가 이에 반발하는 문화예술계와 국가 권력, 시민 단체간의 의견 대립 이 사회의 큰 논란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국가 권력이 의도했던 일방적인 여론 형성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현존하는 지배적인 담론은 음란성과 폭력성에 대 한 국가 권력의 절대적 억압 기제로서의 ‘검열’,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인 표현의 자유를 옹립하고자 하는 국민 개개인의 절대적 자유 기제로서 국가 권력에 대한 ‘검열’이 대립하는 場이 되고 있다. 언론은 검열이 독재 권력의 불가피한 적자이며, 민주화를 가로막는 직접적 이고 제도적인 장애물이라는 재래적인 비판 조차 논하지 못한다. 표면적으 로는 억압과 욕망의 대립으로 드러난 현 국면을 친절하게 보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억압의 아간지옥으로 범벅이 된 이 사회의 진실을 은폐 하고 앞장 서는 데 더없이 충실한 충견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다. 바야흐로 의식적 담론의 층위로 검열 문제를 끌어냄으로써 기원을 알 수 없는 사회적 히스테리가 도래하는, 이를테면 일상적 삶의 모든 면에서 광 범위한 금기 체계가 작동하는‘총체적 검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국가 권력 또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으로 여론을 조장하여, 사회적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앞장 선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국가 권력을 ‘검열’하라

모든 검열은 계급/계층의 토대와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하며, 이것 은 곧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검열 또한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기 반으로 생성된 정치 제도이다. 따라서 어떠한 토대와 상부구조의 이해 관 계에 얽혀서 이것을 억압한다면, 김지하 시인의 표현대로 민주주의는 이미 사라진지 너무나 오래이며,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검열’을 국 가 권력 운용에 대한 국민의 ‘검열’과 ‘압력’으로 대체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공정성을 지속적으로 따지는 일이 다수 민주의, 민주에 의한, 민주를 위한, ‘검열’과 ‘압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검열의 철폐, 검열의 소멸을 위한 국민의 국가 권력에 대한 ‘검열’과 ‘압력’, 바로 여기에 민주주의 실현을 위 한 최소한의 실천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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