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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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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회
106호 [사회비평] 민주주의와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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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승인 2006.02.26  18: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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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사회비평] 민주주의와 악
2003-04-04 13:39 | VIEW : 27
 
106호 [사회비평] 민주주의와 악

두려움, '악의 가능성'과 '악의 현실성'의 징검다리

편집위원회


정권이 바뀌었어도 '더러운 정쟁(政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북풍 음모설, 지리한 정계 개편 논쟁, 보궐선거에서의 지역 감정 자극 등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다. 과연 이 땅에서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아니, 논의를 확장시켜 볼 수도 있겠다. 진화론에 근거한 '정글의 법칙'으로 요약되는 자본주의는 천년왕국으로 영원히 존속할 것인가. 인간의 해방과 소외의 극복을 위해 출발했던 맑스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의 공인철학으로 동원되어 결국 '짖지도, 물지도 못하는 죽은 개'(김성기, 〈마르크스주의는 과연 죽었는갠)로 전락한 사실은 인간 도덕성에의 신뢰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인간 내부에 어떤 악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기에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공산당선언〉)로의 진행이 요원하게 다가서게 만드는가.


짖지도 못했던 국가사회주의

이에 접근하기 전에 서구의 어느 문명비판론자가 얘기하는 문명인과 식인종의 만남을 먼저 살펴보자. 문명인이 식인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 있지? 아, 잔인하기도 하여라." 이에 대한 식인종의 답변.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먹을 만큼만 죽인다. 그런데 너희는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는 거지? 아, 어리석기도 하여라." 제1,2차 세계대전을 겨냥한 식인종의 비아냥이 날카롭기만 하다. 문명인이 내세우는 문명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식인종의 이러한 답변에는 문명인의 입장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문명성과 자연성의 대립을 통해 문명의 야만성을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있으나, 기실 식인종은 배가 불러도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 속에는, 정해진 영역 속에서 성욕을 해소하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도, 다른 지역을 기습해 같은 인간을 죽이도록 하는 유전자가 존재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문명 이전에 '에덴의 동산' 같은 낙원을 설정했던 맑스의 '원시공산제' 논의 역시 관념적이란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원시공산제'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해본 적이 없다. 경제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피의 부름, 피의 부름이 야기하는 정치의 문제가 전면화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제는 '모여 삶'에서부터 비롯된다. 예컨대 '북풍'은 남한과 북한의 대립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역 감정'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구조, '정계 개편'은 여와 야의 대립구조,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 '이념'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대립구조를 바탕에 깔고서 하나의 조직은 견고한 응집력을 확보한다. 폴 리쾨르가 던지는 질문 "악의 가능성이 어떻게 해서 악의 현실성이 될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현실 행위로 되는 것일까?"의 해답 역시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고 추적할 수 있다.

'악의 가능성'과 '악의 현실성'을 잇는 것은 두려움이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아테네의 성장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었다. 페르시아의 위협에 대항해 오랫 동안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나 힘의 균형에 위협이 느껴지는 순간 동맹은 깨어지고 만다. 리처드 랭햄·데일 피터슨은 이에 주목하여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마이클 하워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20세기의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역사 전반에 걸쳐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폭력적이거나 욕심에 찬 동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고력이 있기 때문에, 위험이 목전에 닥치기 전에, 위협이 있기 전에 그 가능성을 분별하거나 혹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싸운다는 것이다.…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누가 더 크고 힘이 센가를 논리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겨루는 자존심 강한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는 자존심 강한 두 도시국가 사이의 경쟁으로 시작된 것임을 곧 알 수 있다."(〈악마같은 남성〉)




유전자 암호를 풀어보면

유전학, 뇌의 구조, DNA의 요소 등을 토대로 인간에 대한 정치한 분석 보여주고 있는 장 디디에 뱅상 역시 "담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열정이지 이성이 아니다"(〈인간 속의 악마〉)라고 함으로써 비슷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더욱이 "종의 진화과정에서 정치가 언어보다 앞섰다"고 밝히는 대목에 이르면 내 몸 속을 흐르는 피의 원죄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의 위계구조와 이에 따른 지위의 추구, '나'와 대립하는 '너', 쫓기는 삶과 두려움이 숙명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갈등 위에서 정치는 비로소 논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집단 안에서도, 집단 밖에서도 누구도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자본주의는 이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의 이념이 아닌가.

앞에서 밝혔듯이, 인간은 정해진 영역 속에서 배 부르고 성욕이 해소된다고 할 지라도 만족을 못하는 특이한 존재이다. 이 특이한 범주에 속하는 동물이 하나 더 있는데, 이게 바로 침팬지다. 유전자 암호를 분석한다면, 인간과 침팬지가 얼마나 가까운 지 금새 드러난다. 인간은 고릴라보다 더욱 가까운 침팬지의 사촌이다. 그래서 그런지 침팬지 역시 다른 침팬지 집단에 무리지어 숨어들어가 홀로 떨어져 있는 동종을 잔인하게 죽이고 돌아오는데 능수능란하다. 기습하러 가는 도중에 먹이감이 나타나더라도 목표를 포기하는 일이 없을 정도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 것일까. "싸움에서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할까? 이웃과의 경쟁 속에서 사는 집단-패거리에게 안전하게 상대를 죽일 기회는 이웃을 약화시킨다는 앞서와 같은 저변의 이유에서 보상이 있다. 미래를 알 수는 없으나 어떤 경우에서든지 이웃은 결국 경쟁자이며 무기를 가지고 있고 위험하다. 내가 힘이 셀수록 그들의 영역을 쉽게 빼앗을 수 있다. 그 땅이 주는 이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든지 간에."(〈악마같은 남성〉)

침략과 지위 경쟁이 진화에서 가장 앞선 '동물들'의 공통점이고 보면 "유인원의 극도의 난폭성은, 그들 조상의 음침하고 괴기한 특성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왔다기보다는 매우 발달된 인식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라는 생명공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인간의 인간됨, 즉 동물성의 지양 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사회과학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근대성'을 지향하며 '성찰 능력'을 중시하는 이유는 여기에 의미가 있을 성 싶다. 또한 인문학에의 관심이 결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80년대와 90년대의 한국사회가 다르다면 여기서부터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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