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호 [시사포커스] X파일과 음모이론
2003-04-04 13:40 | VIEW : 35
 
108호 [시사포커스] X파일과 음모이론

“사실뒤편에 질실이 따로 있다”

호한용 / 편집위원


어디선가 냄새가 난다. 잘 알 수는 없지만 거대한 세력들이 모종의 힘겨루기를 벌일다는 의심같은 것. 만약 그런 느낌이 온다면 당신도 음모이론의 세계로 한 발 내디딘 셈이다.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란 무엇인가. 최근 이런 제목을 가진 영화가 나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음모’의 역사는 ‘정캄의 역사와 같아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세기말의 심리적 공황과 겹쳐서 세간의 시각을 충동질하고 있다. 그간 전세계적인 인기를 독차지했던 텔레비전 시리즈 ‘X파일’의 흔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음모’에의 의지 혹은 관심은 과연 세기말의 징후일 뿐인가.

아다시피 음모이론은 우리 눈앞에 펼쳐진 사실의 세계 뒤편에 ‘진실한 진실’이 있을 것이란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가설이다. 그리고 이 가설은 이런저런 문제로 진실을 밝혀내기 어렵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을 설명하는 데 주로 사용되어 왔다.

주로 정치의 지평에서 주목되어왔던 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주로 과학의 지평에서 논의되어왔던 것은 후자의 경우다. 즉 수많은 공작정치의 소용돌이가 정치적 지평의 음울한 행사였다면, 초과학적인 불가사의는 과학적 지평의 신비스러운 페스티발이었다. 이와같은 유형의 음모이론은 주위에 무궁무진하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사건과 UFO 및 외계인과 관련된 음모이론. 이 외에도 미 CIA의 마약거래설, 영국 왕실의 사주에 의한 다이애나 사망설, 화학무기 개발과정에서 AIDS가 발생했다는 주장 등을 비롯, 엘비스 프레슬리·마를린 먼로·존 레넌·커트 코베인 등 스타들의 사망과 관련한 온갖 음모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음모이론은 나름의 치밀한 논리와 정황 증거를 제시하고 있어 단지 ‘설’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특히 오른손의 몽둥잉와 군화발에 의해 억압되어온 우리네 실정에서는 오히려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그간 절차적 수준의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척되었다고 하지만, 안기부가 북한과 ‘북풍 ’을 놓고 거래를 했다는 것은 웬 말이고 재벌·정치인·관료·언론이 공모하여 한국경제를 말아먹었다는 것은 웬 말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의심많고 말많은 사람들의 수사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오늘의 우리네는 건널 수 없는 강 저편의 ‘진실의 대륙’을 그리고 싶은 상상력이 응어리져 있는 것 같다.

흔히 음모를 파헤치는 방법은 이를 꾸민 세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색출방법은 음모를 통해 이익을 얻는 쪽이 어딘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만약 현재 IMF금융위기가 특정집단의 음모라면? 앞의 추리방법에 의하면 ‘범인’은 미국, 그 중에서도 월가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투기성 금융자본이다. 최근에 발간된 소설 <도미노 코리아>(다산기획)는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가 J. p모건 등 국제금융 자본과 이를 후원하는 미국정부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 금융회사에서 아시아를 상대로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하던 재미교포가 거대한 음모를 알아채고 실체를 파헤치려다 ‘어두운 세력’에 의해 추적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간 인류가 알 수 없는 블랙박스는 외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음모’에의 의지를 통해서 두려움을 속박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다.

음모의 정체는 ‘외부의 그 무엇’이 아니라 ‘내부의 그 무엇’이 아닐까. 인간이 자신의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란 흔히 타인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것이었다. 음모이론은 인간의 근보넉인 악에 대한 가설이다. 그리고 세기말의 불안감은 이를 북돋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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