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②유럽민중운동 fHUMAN
2003-04-04 13:56 | VIEW : 8
 
114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②유럽민중운동 fHUMAN
for HUMAN, 임금의 노동해방에서 삶의 인간해방으로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유럽민중운동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20세기 합법화를 통해 개량화되었던 유럽민중운동이 보다 급진적인 방향선회를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발점이 ‘68 혁명’일 것이다. 자본의 권위주의적인 통제에 대한 프랑스 노동자의 거부에서 비롯된 ‘68 혁명’은 단지 더욱 많은 임금과 사회보장 급여를 요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노동과정과 사회운영에서 보다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유럽민중운동의 이러한 부활은 자본측에게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자본측은 반격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이른바 신보수주의 노선이다. 자본측의 반격은 처음에는 노사관계를 대대적으로 개악시키는 대처리즘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공격만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진취적인 기운을 꺾을 수 없었다. 이에 자본은 노사관계의 개악에서 나아가 정보기술을 원용하여 물질적 생산성을 비상하게 향상시키면서-이것은 로봇에 의한 자동화로 상징된다-그와 동시에 노동자에 대한 더욱 빈틈없는 통제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지배력의 고도화를 꾀했다.
아울러 자본은 물질기술적·조직기술적 생산력을 바탕으로 전세계적 범위에서 노동자 민중을 지배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독점은 더욱 강화되어 초국적 독점으로 되고, 초국적 자본이 지배적 분파로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다.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공세는 이른바 선진자본주의라고 하는 나라들 안에서도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실업자를 증가시키며, 노동조합이 공인하지 않는 현장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화하는 등 노사관계를 개악시켰다. 이 공세는 또한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만들고, 파트타임.임시직, 계약직, 파견근로, 자가고용 등 여러가지 가면을 통해서 ‘고용조건이 불안정하고 근로조건이 열악한 임금노동 형태들’을 확대시켰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해 강도높은 ‘유연화-착취(flexiploitatiom)’가 이루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인간군(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유연화-착취, 지배기술의 고도화
그런데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을 위주로 해 온 종래의 노동운동은 이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단지 기득권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이에 유럽민중운동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간다는 진취적인 기상을 잃었고, 아울러 그러한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는 명예도 잃어갔다.

그러면 유럽민중운동은 끝났는가. 유럽에서는 지난 시기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투쟁과 저항을 시작했으며 이들의 투쟁을 계기로 해서 이러한 성찰이 대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고 직장에 나가는 ‘봉급생활자들’이 아니라, 특별한 숙련기술이나 전문지식을 갖지 못하여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자본은 이것을 경쟁력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는 일이 극히 단순하고,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하며, 보수가 극히 낮은 일을 정신없이 하거나 이것을 거절하면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어 ‘영구실업자’, ‘인간쓰레기’가 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전자가 많다면, 사회보장의 전통이 뿌리내려 있는 유럽에서는 후자가 많다. 이것이 같은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실업율이 낮은 반면에 유럽 쪽에서는 실업율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이 실업자들이 마침내 운동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거기에는 나이먹은 실업자들만이 아니라, 예비 실업자인 학생과 젊은 실업자, 즉 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이 중요하게 포함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들 학생들과 청년들을 새롭고 강화된 지배질서에 순응시키기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실업자 생활을 겪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취직공부에 몰두하게 하고 나서, 졸업 후에는 자본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사회적응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업자운동’이라는 새로운 유럽민중운동의 형태는 종전의 노동운동에 대한 하나의 커다란 혁신이다. 왜냐하면 비록 종전의 노동운동도 고용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주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임금, 근로조건 및 복지향상을 중심으로 삼아왔었기 때문이다. 반면 종전의 노동운동에서는 실업자 문제는 아무래도 부차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실업율은 구조적으로 만성적으로 높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있어서는 이제 ‘일을 할 권리’가 보다 높은 임금이나 보다 나은 근로조건보다 더욱 중요해지게 되었다. 유럽민중운동의 중요한 의제가 실업문제로 바뀌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그러나 실업자운동이 전면에 나서면서 운동의 혁신은 단지 실업문제를 중요시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모델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업자들의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대안적인 사회모델이 필요하며, 이 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이 필요하다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이 모색은 아직 체계화된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추구해가는 방향은 분명하다.


실업자운동, 유럽민중운동의 분기점
하나는 형식화한 허구적 민주주의를 참 민주주의로의 변혁하는 것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나아가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에 있어서까지도 대중이 참으로 그 운영에 있어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가 급진화되어야 한다는 사고이다. 실업보험은 실업자 대중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게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노동조합은 조합원에게 중요한 결정권을 주어 관료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고이다. 나아가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냐 국유경제냐 하는 이분법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폐를 주고받으며 이루어지는 활동만이 아닌 비화폐적인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가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득은 단지 임금 노동을 한 데 대한 대가로서만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이든지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고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결국 사회를 밑받침하고 있는 철학이 바뀌어야 할 것이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자신의 철학을 바꾸어야만 이같은 변화를 추진하는 추동력이 되고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화시켜 이야기하면, 유럽민중운동은 봉급생활자들의 보수를 더 많이 받게 하는 것을 중심과제로 하던 ‘노동해방’의 철학으로부터 임금노동 이외에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나아가서는 모든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해방’의 철학으로 자신을 근본적으로 혁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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