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호 [시사기획] 한국실업자운동-- ①총론: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이기를
2003-04-04 14:02 | VIEW : 17
 
121호 [시사기획] 한국실업자운동-- ①총론: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이기를
대량 실업사태, 자본의 필연적 사생아  

현재 한국은 대량실업의 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에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노동조합운동을 반성하고 실업자운동의 한국적 의미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이은숙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기획1실장


99년 1월 정부 발표 실업률은 8.5%로, 98년 12월 7.9%에 비하면 한달 새에 0.6% 포인트가 늘어나면서 9%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부의 실업통계가 고무줄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97년 1월에 2.6%, 98년 1월에 4.5%에 비하면 97, 98년 동안 실업자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대량실업’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량실업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실업’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기계
우리나라에는 90년대 후반기에 이런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의 ‘심각한’ 대량 실업문제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급속한 생산력 발전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구조적 요인,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과잉축적의 심화)를 통해 노동자를 대량으로 과잉화하여 축출하고 있기 때문임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산업순환의 ‘공황기’에 접어들어 있기 때문에 더욱 급격하게 발생하고 있다.

실업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든지 간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면 어디서건 있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것이며,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태로 그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기가 좋아지면 실업문제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경기순환적 실업’은 경기호불황에 따라 실업자가 일시적으로 증감치를 높여갈 때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며,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적 실업’, 즉 상대적 과잉인구의 표출 양상과 정도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업문제가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고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자본이 전유함으로써 ‘과잉축적’을 초래한 공황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생산력의 발전은 본래, 노동자 1인당의 노동을 경감시켜 노동의 양을 줄여줌으로써 노동자의 ‘자유시간’을 확대시킬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자 1인당 노동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일부를 끊임없이 노동으로부터 축출함으로써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 반실업자)를 점점 더 큰 규모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는 생산력이 발전됨에 따라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는 더욱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되고 축출되는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생활수단을 확보할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축적의 진전과 생산력 발전에 따라 ‘상대적 과잉인구’, 즉 ‘산업예비군’이 누진적으로 증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인구법칙’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실업·반실업 상태의 상대적 과잉인구를 생산하고 점점 더 증대시킴으로써,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노동자를 점점 더 실업자로 만들어 그들이 생활수단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는 작용을 하게 되고, 고용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켜간다.

이러한 현상을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신기술개발이나 고부가가치산업을 육성해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는 논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위와 같은 실업문제의 발생근원을 생각할 때 오히려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즉 실업문제의 본질은, 본래적으로는 당연히 노동의 절약을 의미하는 생산력의 발전이, 노동자 1인당의 노동을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하여 노동자 수의 절약, 가변자본의 절약으로서 나타나는 데에 있다.

경제학에서는 흔히 실업문제를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거하여, 수요-공급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애당초 자본축적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상대적 과잉인구를 배경으로 하여 작용하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독립하여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오늘날 경험하고 있듯이,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바깥에 일없는 사람들(실업층)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언제 일자리에서 밀려날지 알 수 없어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낮추고서라도 일자리를 보전할 생각까지 하게 되고, 자본의 요구에 더욱 더 스스로 종속시켜감으로써 과도노동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다. 즉 자본이 마음대로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인구로서의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 반실업자)가 노동시장에 늘 넘쳐나는 것이 자본의 요구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자본은 본질적으로 근본적인 실업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업자가 ‘체제를 위협할 정도’가 되는 심각한 상황이라면 아무리 탐욕스러운 자본측이라고 하더라도 실업대책을 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와 자본은 실업자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러나 ‘사후적으로’ 실업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독재, 실업자운동의 출발점
정부의 실업대책들이 ‘사후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금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대량 ‘정리해고’를 전제로 하여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수의 급격한 증대는 그러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자본의 독재’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며 만국 자본주의국가들 공통사항이다.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모든 운동들에 대한 적대와 탄압 역시 ‘자본의 독재’에 해당된다. 실업자운동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자본의 독재’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자본은 어떤 논리를 펴는지에 대하여 이미 1백30여년 전에 맑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간파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그들 사이의 경쟁의 강도는 전적으로 상대적 과잉인구의 압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또 그들이 노동조합 등등에 의하여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계획된 협력을 조직하여 그들의 계급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 자연법칙(수요와 공급의 법칙-역자주)의 파멸적 영향들을 제거하든가 또는 약화시키려고 하자마자, 자본과 그의 아첨꾼인 경제학자는 ‘영원한’ 그리고 이른바 ‘신성한’ 수요공급법칙에 대한 침해라고 떠들어댄다.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어떠한 단결도 이 법칙(수요와 공급-인용자)의 ‘순수한’ 작용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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