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호 [시사포커스] HOT여고생 팬 집단졸도 소동
2003-04-04 14:04 | VIEW : 31
 
129호 [시사포커스] HOT여고생 팬 집단졸도 소동
‘핫’청소년 문화, 일탈과 고립의 그림자

김성희 편집위원


한국 사회의 무서운(?) 10대 아이들이 다시 한번 기성 세대를 걱정케하고 있다. 지난 18일 콘서트 장에서 일어난 여고생 1백여명의 졸도소동과 뒤이어 발생한 19일 여고생 열성팬의 자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대중 스타에 대한 청소년 집단의 열광적인 집착과 일탈행위로 표상되는 이러한 집단졸도 혹은 자살사건은 그 동안 심심찮게 벌어져왔던 일이다. 그리고 기성층에게는 이번 사건 역시, 열심히 공부해야 할 청소년이 벌이는 헤프닝으로 몇 번 혀끝을 차고말 일이다. 자살한 여고생의 학교 관계자는 이 학생에 대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성적은 하위권이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즉,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범적이지 않은 학생이었다는 셈이며, 이번 사건은 이러한 소수 특별한 학생의 이성을 상실한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대중스타에 대한 청소년의 과도한 집착과 콘서트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양상들을 몇몇 청소년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스타들이 지니는 신화 이미지와 상품화의 소비를 통해 얻는 청소년 집단의 만족감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존 피스크는 청소년 집단을 연령으로, 계급으로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집단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팬덤문화의 소비를 통해 자신들의 결핍된 문화자본을 획득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지님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억압된 육체적, 정신적 욕구를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다양한 그들 자신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타는 그들의 영웅인 셈이다.

   하지만 제도적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이러한 소비행위가 또 다른 권력관계를 잉태하며,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관계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즉, 수직적이고 일방향적인 교육을 통해 내면화된 권력관계가 제도를 떠난 문화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스타에 대한 의존성은 한 명의 영웅이 바람같이 나타나 악을 물리치고, 자신의 소원을 성취해 줄 것이라는 신화같은 일말의 희망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의 신화적, 상품적 속성은 순간의 소비에 의해 그들의 욕구충족을 대치하도록 자극함으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잊고 살아가도록 만든다. 대중문화를 도구로 자본주의의 치밀한 재생산 영역을 확보하는 전략이 청소년에게도 적용되는 셈이다. 노동과 여가, 일상과 비일상, 그리고 공부와 일탈이라는 구분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법칙으로 분리되어 존재함으로서, 청소년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언론보도에 의해 부추겨지는 청소년 집단의 소외감이다. 일련의 청소년 범죄 보도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이번 사건 역시 학교에 있어야 할 청소년들이 벌이는 웃지 못한 소동으로 치부됨으로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착실한 모범생으로의 자아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됨으로 철저하게 상품화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능동적인 향유의 과정이나 비판적 수용이라는 생산성은 사장된 지 오래이다. 교육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권력체계가 비제도적인 일상문화의 영역에까지 침투한지 역시 오래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것은 과도하게 빚어진 청소년 집단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상실된 주체성과 정체성, 다양성 획득을 위한 교육과정의 회복과 능동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장의 확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