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호 [시사기획] 권력과 전자감시- ②감시카메라와 노동통제
2003-04-04 14:04 | VIEW : 26
 
130호 [시사기획] 권력과 전자감시- ②감시카메라와 노동통제
감시 속의 노동, '꼼짝말고 일이나 해!'

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충격적인 소식들이 잇달아 들린다. 정보통신부가 지난 13일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 국방부 등 국가 수사기관들이 올해 들어 소형유선전화 감청장치를 기존 장비의 26%나 확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 아니라 전화국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군 수사기관, 국세청 등 관계기관에 제공하는 전화통신 관련 정보 건수가 올 상반기에 61만6천4백44건으로 작년 대비 무려 65.3%나 증가했으며, 전화국이 이들 기관에 제공한 정보에는 개인정보 내용은 물론 통화 명세, 통화상대자, 통화시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지난 상반기 동안 수사기관에 의한 긴급감청 건수는 150건이며, 법원의 영장없이 감청에 들어가 36시간 이내에 감청을 끝낸 경우는 47건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이나 PC통신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서비스 공급업체인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등 4개 통신업체들은 올 상반기 동안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에 562건의 개인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 사건들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일상적인 감시사회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우연히 폭로된 사실도 아니며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하나의 경향이다. 이 경향은 발달하는 기술을 특수 이해관계와 목적에 전용하는 기술 권력과 그에 저항하는 이들간의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이 신자유주의적 유연화를 추구하는 생산과정 변화와 맞물려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작업장이다.

   운전기사의 ‘삥땅’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버스 안의 CCTV는 현금징수기나 타코시스템과 맞물려 주행과정과 ‘작업 성취도’를 ‘원격에서’ 분 단위로 체크하는데 더욱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대전 모시내버스에서 CCTV에 녹화된 기록을 근거로 활발하게 노동조합에 참여하여 있는 노동자들을 징계하고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CCTV 설치 논리의 이면에 ‘서비스 향상’이나 ‘고객서비스’ 이상의 것이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속에 부쩍 CCTV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버스 회사들은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오히려 ‘양심’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이 기술 도입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상적 감시기구의 확장

   이 버스 CCTV의 문제는 단순한 하나의 사례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버스 CCTV가 도입되고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최근 전자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급증하고 있는 작업장 감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본측은 생산성 향상과 대고객 서비스 등을 도입의 근거로서 제기하고 있으며, 그 밑바탕에는 ‘사실만을 전달할 뿐인 중립적인 기술’이라는 논리를 깔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점점 더 그 압박 수위를 높여 가는 기술을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1996년 3월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은 바코드 칩이 내장된 ICCARD 신분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ICCARD가 단순히 신분 증명의 용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문 및 각 반의 샵에 이미 설치가 완료된 자동화 시스템과 연계되어 특정한 리더(reader) 기기 없이도 노동자의 위치와 작업 성과를 중앙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RF 액티브 뱃지’의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사측에서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근거로 “비효율성을 과감히 제거하고 공장을 혁신하고`…`업무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낯설지 않은 논리이다. 또한 유례없는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한국타이어에서는 정문과 탈의실 등 사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 이외에도 최첨단 자동화 기기인 DAS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작업장에 들어가면 DAS에 사원번호를 입력함으로서 업무가 시작되며 DAS는 이후 신상명세, 날짜시간, 개별 노동자들의 작업 내용, 휴식 및 기계작동 여부 등 노동자의 개인 정보와 작업성취도를 일체화시키면서 작동된다. DAS는 중앙의 메인 컴퓨터로 연결되어 있으며, 다시 서울 본사 컴퓨터에 연결되어 개별 노동자들의 작업 상황이 실시간으로 서울 본사에서 파악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조차도 통제되고 있으며, 극도의 소외 상태에서 두통, 위장병, 요통 등 육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불안감이나 동료에 대한 불신,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 의식적인 영역조차도 통제받고 있다. 더구나 DAS 시스템은 생산력 극대화 뿐 아니라 노조 탄압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활동가로 지목되면 집중적으로 감시되고, 기록된 데이터는 노동자의 접근을 통제한 채 조작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세부적인 작업에 대하여 기억할 수가 없으므로 ‘데이터 수캄에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의 개입 필요

   CCTV, ICCARD 이외에도 전자정보적 감시의 수단과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는 전자우편(E-mail) 감시, 인터넷 사이트 차단, 전화 모니터링에서부터 미국의 경우에 확산 일로에 있는 거짓말 탐지기나 유전자 검사 등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의 억압’으로 바로 이어지고 있는 암울한 상황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노동과정의 기술적 개선(기계화·자동화·정보화 등)이 단순한 노동과정 및 생산방식의 기능적 재배치 및 재조직화를 넘어서서 관리와 통제상의 정치적 문제까지 포괄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더욱이 전자정보기술은 그것이 실제로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감시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판옵티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작업장 감시기술은 자본주의의 도래 이후로 계속 존재해 왔던 관료제적 통제의 연장선상에서 보다 빈틈없는 통제, ‘통제의 손실’을 보완하는 기술인 것이다.

   전자주민카드나 버스 CCTV 장착을 둘러싸고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감시 논쟁은 정보기술의 ‘잘못된 활용’이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설계 과정에서부터 모종의 통제 의도가 포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따라서 이미 기술이나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 다음에 행하는 사후적인 대응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작업장 감시를 막는 최선의 길은 기술의 설계나 도입 과정에서 좀더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 이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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