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호 [시사포커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의 역사적 진실
2003-04-04 14:06 | VIEW : 21
 
132호 [시사포커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의 역사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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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건 / 사회복지학 석사4차


지난 8월부터 우리는 방송과 신문지상을 통해 한 낯선 곳에서 전해오는 소식을 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지역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AP통신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 사건으로 보도되면서 외면되었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미국 대통령이 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면서 상황은 급진전되었다.

  일련의 상황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었는가? 먼저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고 확인된 정보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로 노근리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 작전을 수행한 군인들의 고백으로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생존자들은 방송사, 신문사, 정부기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이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오래동안 애를 썼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대부분의 매체와 행정기관은 이 ‘사실’과 그들의 ‘애’를 외면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앞의 세 가지에 해당되는 사례가 노근리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 경남 마산 곡안리, 사천 조장리 등 제2, 제3의 노근리가 계속해서 알려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이 정보들을 해석하고 행간의 의미를 읽어보자. 먼저 노근리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물꼬를 텃다.

  누가 그랬던가. 한반도의 근대사는 주변4강의 역사라고. 주민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전 후에도 ‘영원한 우방’이라는 친미사대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은 바로 좌익으로 내몰려 자신은 물론 가족 더 나아가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생존자 전원의 안전을 보장받기도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1960년부터 이 진실을 알리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했다는 것이다. 미군의 양민학살이라는 행위의 진위 차원을 넘어 미군이 한국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을 남겼으며, 이것이 그 동안 은폐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고발한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는데 사람의 반평생도 모자란 긴 시간이 걸린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서 노근리는 또 하나를 알려준다. 진실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밝혀내는 것이다.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오히려 한국 정부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의식과 이것을 은폐하고 억압하려고 하는 국가의 의식은 매우 이질적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근리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깊이 사과하는 당시 미군병사의 말이 노근리 주민들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도 중요하고, 정부와 행정기관에 잠재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도 또한 중요하겠으나 진실을 밝혀내는 의지는 평범하지만 깨어있는 바로 나 또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처음에는 그 곳이 경부선 철로가 지나는 지도상의 한 지명으로 다가왔으나 지금은 반도의 역사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얼마남지 않은 2000년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작하는 첫 해라는 것뿐만 아니라 전쟁의 상흔을 50년째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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