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호 [시사쟁점] '새천년 기념 사업 비판 토론회'
2003-04-04 14:07 | VIEW : 11
 
133호 [시사쟁점] '새천년 기념 사업 비판 토론회'
새천년의 설레임을 가로막는 내외부의 걸림돌

권경우 / 문화평론가


오는 11월30일부터 12월3일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WTO 제3차 각료회의에서는 전세계 132개국이 모여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뉴라운드)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WTO는 과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우루과이라운드가 시작되면서 탄생한 국제기구로서, GATT가 관세 인하 및 수출입쿼터를 조정하는 등의 문제만 다룬 반면에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범지구적 권력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간 모든 장벽을 없애면서, 무엇보다도 규칙 위반 국가에 대해 강제력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강력한 분쟁해결 절차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 진보진영에서도 뉴라운드 대응으로 민주노총, 전농 등을 포함해서 모두 20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고 있는 ‘투자협정·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이하 ‘민중행동’)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지난 4일 녹색연합 회의실에서 열린 ‘WTO 뉴라운드 대응전략 워크샵’은 뉴라운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각 분야별 대응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이날 워크샵에서는 ‘WTO 뉴라운드와 우리의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이창근 사무국장(민중행동)이 발제를 했으며, 그 외에 분야별로 농업, 환경, 지적재산권 등 3개의 발제가 진행되었다. 이날 발제를 중심으로 WTO의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한다.


   현재 뉴라운드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중심은 그 협상범위를 놓고 북반구와 남반구 국가들간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 일본, EU 등의 북반구 국가들은 이미 설정된 의제인 농산물 빛 서비스 분야에 공산품, 투자, 경쟁정책, 정부 조달 영역 등을 추가하여 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무역자유화 협상의 출범을 지지하는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의 이행 문제 및 협정 자체의 결함에 대한 검토를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면서 추가적인 자유화 협상의 출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생명특허권' 등 첨예한 대립


   그 가운데 현재 뉴라운드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설정 의제인 ‘농업협정’으로 인해 쌀 시장 개방 압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서비스협정’에서는 공공영역이 대거 포함되어 국내의 공공서비스는 더욱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적재산권협정’에서는 ‘생명특허권’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초국적자본 및 해외투자자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논의가 다자간투자규범 (MFI)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쟁점에 대한 현정부의 대응전략은 IMF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자유화와 개방화 정책을 중심논리로 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이 반대하는 기설정된 농업, 서비스 분야 이외에 ‘무역과 투자’, ‘무역과 경쟁정책’, ‘정부조달 투명성’ 등의 신통상 의제를 이번에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WTO는 ‘국제적인 부의 재분배’, ‘전세계적인 고용기회의 확대’라는 구호 아래 건설되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나타났다. 빈곤은 더욱 확대되었고, 초국적기업들은 93년과 96년 사이에 외국에서의 산출량을 26%나 늘린 반면, 고용인은 오히려 4%를 줄였다. 이제 WTO로 인해서 각국 정부는 자신들만의 정책을 자율적으로 펼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기존의 WTO 협정들에 대한 포괄적이고 철저한 검토와 평가 없이 다시 ‘새로운 라운드’로 접어든다는 것은 피폐한 민중들의 생존권만을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은 뻔하다.


   또 하나. 지난 4월 15일 대통령 산하 ‘새천년준비위원회’(위원장: 이어령, 이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6월 15일 새천년사업의 내용과 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새천년 사업은 참담한 문화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은폐하려는 발상이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일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의 토론회는 시민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화연대의 토론회는 ‘새천년 기념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 아래, 심광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새천년 사업의 문제점 비판과 21세기 창조적 문화한국의 전제조건’과 이상헌 교수(건국대 건축대학원)의 ‘시대착오적인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의 발제를 통해 총체적인 비판이 이루어졌다.

   평화의 열 두 대문, 전근대적 발상의 전형


   새천년 사업의 주요 내용으로는 새천년 첫날의 햇빛 채취, 평화의 공원과 평화의 열두 대문 건립, 평화기상대 건립, DMZ 문화특구 지정, 국제 디자인대회 개최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는 상암동 부지에 ‘평화의 공원’을 만들고, 그곳에 ‘평화의 열두 대문’을 10년에 하나씩 120년 동안 모두 열 두 개를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의 문제점은 필요한 예산의 확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준비위원회는 “열두 대문은 국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국민의 성원이 커지면 대문은 커지고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가 될 수 있다.”(대한매일신문 5월20일자)고 주장했다. 이건 순전히 협박이다. 애초에 아무런 국민적 합의 과정 없이 몇몇 사람이 무작정 정해놓고는 국민들의 호응 정도에 따라 대문이 달라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사업의 결과에 대해서는 준비위원회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평화기상대’는 세계의 평화지수와 행복지수를 공표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이 평화이고 행복인가.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국민의 1천만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나라에서 ‘세계’의 평화지수와 행복지수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 외에도 ‘인간의 새천년화’ 사업이나 ‘지식창조 천년화’ 사업 등도 졸속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새천년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업의 추진과정과 예산의 편성과정에 있다. 자그마치 2백억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면서도 공청회와 같은 전문가, 시민 등의 의견수렴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경제적, 정치적 권리 못지 않게 문화적 권리의 주장이야말로 삶의 민주주의적 문화를 실현하는 핵심사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정책을 비롯한 문화 영역에서 참여민주주의의 원칙과 퍼블릭 액서스 개념이 중점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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