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호 [시사포커스] '99 민중대회
2003-04-04 14:07 | VIEW : 12
 
133호 [시사포커스] '99 민중대회
전복과 해체의 해방구를 위한 축제

김성희 편집위원


'99 민중대회 전야제가 지난 13일 본교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노동자·농민·빈민, 그리고 학생이 결집한 가운데 열린 이번 민중대회 전야제는 IMF 체제하에서 자행된 정리해고 중단과 대량 실업문제의 해결, 국보법 철폐와 의문사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며, 각종 공연과 문화행사로 막을 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학내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진보정당 건설과 관련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와 비판, 단병호 의장의 취임에 따른 민주노총의 향후 방향성 등에 대한 관심 속에서 세계화의 논리와 신자유주의의 공세로 갈수록 취약해져만 가는 민중 현실에 대한 규탄과 결의로 그 힘을 모으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번 민중대회의 전야제는 무언가 낯설어진 느낌이 든다. 원천봉쇄 당한 집회장에 진입하기 위해 빚어졌던 전경과의 마찰이나 산을 넘고 담을 넘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대신 행사에 맞춰 행상을 펼치고자 하는 각종 상인들과 수위 아저씨들과의 실랑이가 있었을 뿐이다. 각종 선전물과 성명서, 모금함으로 분주했던 대열은 “땅콩과 맥주, 소주”를 외치며 대열을 비집고 다니는 상인들과 늘어선 이동 포장마차로 분주하다. 행사 자체도 무언가 세련된 느낌이다. 무대 조명에서부터, 설치된 화면에 비치는 카메라의 손놀림까지 마치 쇼프로를 연상케 하는 화려함에 달라진 집회 문화를 실감한다. 이런 달라진 집회 문화는 비단 이번 민중대회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가두 투쟁 모습 역시 긴장과 엄숙함보다는 활기찬 율동과 랩에 가까운 구호로 집회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까지 하다.

   달라지는 문화의 양상 속에서 운동의 모습 역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왠지 무겁고 진지해야만 할 집회 공간의 변화가 7,80년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설고 거북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이번 민중대회가 어땠냐는 질문에 “재미있었어요”라고 답하는 후배의 모습이 참으로 철딱서니 없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반(反)자본주의를 외치는 그 공간에 장사치들과 상업 문화적인 속성들이 비집고 들어서는 것이 이내 못마땅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가벼움, 흥분과 활기가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집회의 공간, 무언가를 결의하고 외치고자 하는 그 공간의 장엄함을 축제의 활기참으로 채워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바흐친의 말대로 축제의 진정성이 “일상적인 가정을 전반적으로 해체”하는 과정에 있다면, 그리고 “고정된 정체성을 뒤흔들고 일상적인 규칙과 역할의 차이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는 이중성”에 있다면 민중대회의 전야제가 지니는 축제성은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일상의 소수자였던 그들이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되고, 떠들썩한 대중가요에 밀려 낮게만 읊조리던 민중가요에 어깨를 들썩이며, 몇몇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불순한(?) 이야기를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자신 있게 터트릴 수 있는 곳이 바로 민중대회의 전야제와 같은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소수자와 다수자간의 전복이, 권력과 일상에 대한 전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중’이라는 이름에 마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굴레를 뒤집어 써야하는, 명동성당의 눈길 닿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지속해야만 소수자의 해방구를 ‘99 민중대회의 전야제에서 만들어봄직도 하다. 수만 개의 깃발 속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소수의 이야기가 힘을 지닐 수 있는, 순간의 전복이 장기적인 전망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축제 의의를 이번 ‘99 민중대회에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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