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 [겨울이야기 첫 번째 : 밀레니엄과 민중행동]
2003-04-04 14:08 | VIEW : 20
 
134호 [겨울이야기 첫 번째 : 밀레니엄과 민중행동]
신빈곤시대와 민중행동

무능한 정치꾼들에게 모라토리엄을...

이원재 편집위원



  요즘 여러분들의 소식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잘 듣고 있습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한 부인을 감시하시느라, 고문에 능통한 공안검사 동료를 위로하시느라, 나아가 저희들의 문화생활을 검열하고 통제하시느라 분주하신 것 같더군요. 그래도 예전처럼 화끈한 난투극을 자제하시는 것 보니 혹시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최근에는 IMF 이후의 경제회복과 사회발전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시더군요. 워낙 말씀을 잘 하셔서 저도 진짜인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여러분들의 깊은 뜻을 고려하더라도 ‘뻥’이 너무 심하더군요. 사기를 치더라도 정확한 근거와 사회 분위기를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먼저 적극적인 외자유치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하셨는데, 그 외자유치라는 것이 단기적으로 자금부족의 위기를 벗어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부채 증가와 경영권 등의 권리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더욱이 여러분이 극진히 대접하고 있는 외국자본은 대다수가 인수합병 전문회사이더군요. 그래서 공장을 짓거나 고용창출을 하기보다는 다운사이징 등 외국식 구조조정으로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 최소화, 임금삭감 등을 실시하여 노동자의 생존권을 악화시킨답니다. 게다가 구조조정 이후에는 뻔뻔스럽게 재매각을 추진하여 아마 한국사회는 갈수록 고용불안이 심화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외국친구에게 얻어맞은 이후로 그 사람들이 인수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저희가 낸 세금으로 부채를 탕감해주고 있더군요. 쯧쯧쯧…. 그러면 안되죠. 더구나 그 사람들은 외자투자자유지역에 입주한 후 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되어 노동자들의 파업권까지도 봉쇄할 수 있을 정도인데, 너무 잘 해주는 것 아닌가요. 덕분에 기고만장해서 임금삭감, 노조원 해고 등 노동운동 탄압을 서슴지 않으며, 제 친구들을 괴롭히더군요.

  덕분에 제 친구들은 IMF 이후 대부분이 놀고 있답니다. TV에서는 “실업 극복이다”, “일자리 창출이다”, “실업률이 줄었다”라며 엄청 떠들어도 오히려 백수만 늘더군요. 뭐 여러분들이 ‘실망실업자’(일자리 부족으로 취업 포기)나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실업자가 아니라고 “박박” 우기며 이상하게 계산해서 그렇지, 실제로 비경제활동인구가 올 8월에 39.2%까지 증가했더군요. 민주노총에 있는 제 친구 이야기로는 지난 8월의 실제 실업자는 335만명이나 되고, 이는 여러분이 우기는 실업율 5.7%의 두 배가 넘는 14%나 됩디다. 그러니까 수학공부를 좀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거의 실업의 일상화이자 장기화인데 수치라도 제대로 알고 계셔야죠. 참고로 주위에서 보신적도 없겠지만 한국에는 월소득이 30만원 이하인 사람도 많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전체 실업율의 43%나 됩니다. 즉 “세상 좋아졌다”고 여러분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저소득 계층일수록 생존권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셈이죠. 그러니 서울에만 노숙자가 3천650명이나 되는 거 아닙니까.

  참, 이번에 외국에 나가시더군요. 시애틀에서 밀레니엄라운드인지 뉴라운드인지 박터지게 싸우는 회의에 참석하신다고 주위에서 걱정이 많던데. 권투경기도 아닌데 ‘라운드’라니…. 이번 뉴라운드는 우루과이라운드에서 허물고 남은 제3세계 국가들의 보호장벽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속셈이더군요. 아직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에 발생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제3세계의 빈곤화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심한 것 같더군요. 준비는 많이 하셨나요? 저번에 보여주신 글을 보니까 거의 엉망이던데. 뭐 거기에 적혀있는 대로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계획이더만. 쯧쯧… 그러면 한국에 돌아와서 좀 힘들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로 나라도 엉망이 될테고.

  특히 문제가 되는 다자간무역협정(MAI)은 힘있는 외국자본이 자신의 해외직접투자를 보호하고자 강제투자규범을 입법화하려는 시도잖아요. 왜냐하면 투자자의 권리를 정부, 지역사회, 노동자, 환경의 권리보다 가장 우위인 것으로 전제하고, 개별 국가에 대한 투자를 해당 사회가 민주적으로 통제할 권리도 인정하지 않구. 게다가 MAI와 관련된 분쟁해결 시스템에는 시민, 지방정부, NGO 등은 완전히 배제되어 참여할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비민주적이더군요.

  사실 민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자유화, 개방화’가 아니거든.(갑자기 반말? 흥분되서…)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큰소리 “빵빵”치면서 추진한 기존의 우루과이라운드, OECD 가입, IMF 이후의 신자유주의화 속에서 보통사람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대량해고, 공공서비스의 축소,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뿐이잖아요. 뭐 심지어 TV에서도 IMF 이후에 소득이 증가한 사람은 상위 20%뿐이고, 나머지 80%는 빈곤화되었다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신빈곤시대’ 혹은 ‘20 : 80’의 시대가 오는 건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중의 현실에는 눈길 한번 안주고, 초국적기업에게 더욱 큰 권력을 보장해주는 투자협정과 뉴라운드를 진행하려는게 말이나 됩니까? 더구나 여러분은 민중들과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매우 비밀스럽고 비굴하게 뉴라운드를 추진하고 있더군요.

  이제 멕시코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 유럽의 ASEED 등으로 구성된 지구적 민중행동(PGA) 같은 친구들은 MAI를 포함하여 자유무역체제 전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장 법칙으로부터 해방하고 사적인 이익의 추구로부터 해방시켜,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을 변화시켜” 내려고 노력 중이지요. 또 국제연대 네트워크의 하나인 ATTAC은 아예 투기자본에 과세를 부여하자고 주장하는 게 매우 설득력 있더라구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특히 대부분의 민중행동들은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상인 뉴라운드는 유예되어야 하고, 대신 기존 협상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와 평가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따라서 무한 경쟁논리가 아니라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민중들의 기본적 권리 증진과 발전이 기본 관점이 되어야 하며,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의 전면적인 참여 속에서 기존 WTO 협정들에 대한 포괄적이고 철저한 검토와 평가가 진행되어야 하죠.

  간단한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말이 많아졌군요. 워낙 한심하고 답답해서…. 여러분들도 TV나 신문에 나오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아마 1주일 안에 저희 같이 될껄요! 그럼 추운 겨울에 민중들을 더 이상 썰렁하게 하지 않기를 바라며.(언제 민중들의 목소리가 거대한 파도로 돌변할 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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