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 [겨울이야기 첫 번째 : 밀레니엄과 민중행동]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
2003-04-04 14:10 | VIEW : 30
 
134호 [겨울이야기 첫 번째 : 밀레니엄과 민중행동]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과거의 잔혹성

손상열 / 평화인권연대



  1998년 9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아래 수천켤례의 신발로 만든 새로운 탑이 하나 만들어졌다. 탑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신발들은 대인지뢰로 발목이 잘리거나 죽은 사람들의 것이었다. 인류가 문명을 자랑하기 전에 자신들이 저지른 야만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지뢰사고 피해자들과 운동단체들이 벌였던 상징적인 시위였다. 이 시위는 대인지뢰금지운동이 단순한 군축운동을 넘어, 인류의 야만행위가 가지는 비인간성과 폭력성을 일깨워주는 자성운동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1억 1천만개에 달하는 대인지뢰가 60여개국에 걸쳐 매설되어 있다. 대인지뢰가 비인도적이며 야만적인 무기로 규정되는 이유는 이 무기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2분에 한번 꼴로 터지고 있는 지뢰때문에 매년 1만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구가 되고 있다.

  대인지뢰는 한반도에도 약 1백만발 가량이상이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98년 말까지 무려 87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이후 지뢰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불구자가 된 민간인들이 1천여명에 이른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대인지뢰로 인한 피해는 비무장지대 부근 민통선마을에서만 일어나고 있지는 않다. 파로호에서 낚시를 하던 하재영(44세, 서울 장충동)씨는 홀수로 떠내려온 발목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기도 했으며, 또 몇달 전에는 충남 청양군에 사는 9살배기 여아가 집 거실에서 지뢰를 밟아 오른쪽 발목이 잘리기도 했다.

  이같은 지뢰로 인한 야만적인 살상과 비인도성에 대해 인류가 반성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물론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소수의 시민, 사회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60여국 1천여개의 NGO가 참여하는 국제적인 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으로 발전하였으며, 국제협약문안을 기초해 각국 정부를 상대로 집요한 설득작업을 벌여나갔다. 8년에 걸친 이런 국제연대운동은 결국 대인지뢰의 제조, 수입, 비축, 사용, 이동, 방치를 금지하는 ‘오타와협약’을 80여개국 정부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체결시켰다. 대인지뢰금지운동은 그동안 정부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던 군축조약을 시민·사회단체들의 국제운동을 통해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20세기 평화운동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야만적인 무기를 제거하자는 국제적인 노력에 한국을 포함해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같은 다섯 나라만이 유독 완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민간인들이 아무리 억울한 피해를 당한다고 해도 지뢰가 갖고 있는 공격억지력때문에 계속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지뢰제거에 드는 막대한 비용문제이다. 주한미군은 한국땅에 설치한 대인지뢰를 제거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이 지뢰 제거 책임을 거부하는 것은 제거비용이 엄청나다는 경제적 이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때문이었을 것이다. 조디 윌리암스(지뢰금지운동에 대한 공로로 97년 노벨평화상 수상)가 오타와 협약이 체결되는 바로 그날, 조약체결에 대한 기쁨보다는 지뢰금지운동이 극복해야할 한계를 지적했던 것은… “대인지뢰금지운동이 앞으로 생겨날 생명의 손실과 부상을 예방하였다는 점에서 이미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지만, 이것이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실행되기 이전에는, 그리고 서명을 거부하는 정부들이 가입하기 이전에는 진정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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