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시사기획] 언론개혁리포트-① 한국신문의 소유독점과 권언유착
2003-04-04 14:35 | VIEW : 8
 
149호 [시사기획] 언론개혁리포트-① 한국신문의 소유독점과 권언유착
언론개혁의 시작은 소유구조 개편에서

김영호 / 언론개혁시민연대 신문특위위원장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 언론개혁의 방향성에 관한 언급이 있었고 뒤이어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조사가 착수됐다. 일부 신문사들은 시민단체가 연루된 음모설로 재단하더니 언론탄압이라고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가세하여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어떤 정치권력도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작-통제함으로써 지지기반을 확충하려는 속성을 지녔다. 이 점을 인정하더라도 조세권 발동을 두고 전개되는 정치권의 대리전은 권력화한 언론의 환심을 사려는 책략적 성격이 짙다. 결국 시민사회가 꾸준히 요구해온 언론개혁의 본질을 호도하고 정쟁의 도구로 삼는 형국이다.

이런 현상은 언론이 권력화하여 정치권력 못지않게 막강한 권력을 구사하는데서 발단한다. 1960년대 이래 정치군인의 32년간 장기집권은 언론이 정치권력과 결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합법성-전통성이 결여된 군사정권이 지지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여기서 권언유착이 생성됐다. 군사정권은 언론을 조작-통제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다. 언론이 군사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고 장기집권을 위한 도구 노릇을 했던 것이다.

언론 조작통제, 군사정권 기반강화
군사정권 치하에서 언론은 독재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시민사회에서 분출하는 민주화 요구를 묵살했다. 민주화 운동을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군사정권의 영속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필요하다면 반체제 운동의 성격을 왜곡·변질시키는 보도행태도 주저하지 않았다. 집권세력의 안보논리에 영합하여 노동-농민운동을 매도하거나 때로는 용공세력으로 몰기도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제홍보에 앞장서 ‘잘 살게 됐다’는 허위의식을 국민에게 심어 정치적 불만을 무마했다. 신군부가 출현하자 전두환씨를 구국의 화신으로 미화하여 민주화의 바퀴를 역전시킨 것도 권언유착의 결과적 산물이다. 언론사 및 그 사주는 그 대가로 유형-무형의 부당이득을 얻을 수 있었고, 지금도 그 같은 행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불법-탈법행위와 경영권의 전횡-횡포가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켜 왔지만 사법적 처벌에서 면제되어 온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또 거액융자, 조세특혜, 그린벨트 완화와 갖은 부당이득을 향유해 왔다. 그같은 사실은 언론계에 형성된 침묵의 카르텔에 의해 은폐되어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유착과정을 거치면서 언론은 권력화에 탐닉하여 정치권력의 창출도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세 차례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일부 언론사들은 특정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편파보도를 일삼았다. 여론조사마저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국민의 대표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이같은 보도행태는 사주 또는 일부 편집간부들이 기존의 정치권력과 밀착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부당이득과 특권의식을 계속 향유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권언유착이 더욱 고착화되어 일부지만 평기자까지 특정정당의 선거운동원처럼 행동했다. 사주의 수구적 정치성향에 영합함으로써 출세를 보장받거나 정-관계에 진출하려는 불순한 동기에서 이런 보도행태를 일삼았을 것이다.

특히 족벌신문이 기득권층의 선전도구로 전락하다 보니 노동자, 소상인, 농민의 이익을 외면해 왔고, 그 결과 소외계층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저하됐다. 개방농정에 따라 농업기반이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으나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합법적 절차를 거친 노조파업도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사용자를 두둔하는 보도로 일관한다. 거대자본-외국자본이 유통시장을 초토화시켜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이 존립기반을 상실하고 있지만 광고주인 대자본가의 이익만 대변한다. 결국 자본-지식-기술-정보에서 열위에 놓인 소외계층은 자기주장을 전달하려고 집단행동에 의존하고 표현방식도 과격해진다. 족벌신문의 보도행태가 사회통합에도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론 빙자 사익 극대화 추구
이같은 보도행태는 소유집중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다. 대부분 신문사는 상법상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소유구조가 창업자 일가 및 그 특수관계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실질적으로는 개인기업처럼 소유주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출자 경영 및 지배가 기업주에게 일치하는 가장 원시적인 기업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유권이 또 소수에 의해 상속된다. 반면에 사회구조는 다기화-다원화하고 있어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소리를 요구한다. 여기서 시민사회와 신문사 사주의 이해가 충돌하며, 1인지배체제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변화를 거부한다. 시대적 명제인 개혁이 번번이 좌절되는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판매시장의 독과점은 여론시장의 독과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1인지배체제의 시장상위 3개사가 신문시장의 70~80%를 점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문시장의 독과점은 다양한 여론형성을 차단하여 민주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 현재와 같은 언론체제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여론은 증발되고 다만 의제여론(pseudo opinion)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이 가공의 여론은 국민다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여론을 빙자하여 사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처럼 신문사 사주 몇명의 가치관이 여론의 형태로 나타나서는 건전한 언론발전을 통한 바람직한 정치발전-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1인지배체제에서 사주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사주가 경영권-편집권을 장악하고 있어 그의 가치관이 보도-논평에 그대로 반영되는 성향이 짙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서는 편집간부를 포함한 일선기자의 노력이 중요하나,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주가 공정보도-진실보도를 요구하는 기자들을 해고하거나 인사조치해 버리면 그만이다. 74년에 있었던 자유언론실천운동, 80년 기자협회가 주도한 제작거부운동에 이어 87년 이후 노동조합을 구심점으로 하는 편집권확립운동 등이 기업주의 인사권 발동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편집권 독립을 통해 공정보도를 실현하려면 소유구조에 일대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동일인 및 그 특수관계인의 지분한도를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소유구조를 분산해야 하는 것이다.

소유구조의 분산에 관해서는 재산권의 제한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중에 대한 봉사’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언론의 존재이유를 인식한다면 그 같은 주장은 논거가 희박해진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공공의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소유지분에 대한 제한이 가능하다. 사주 1인의 독단적 판단이 다수의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소유분산은 언론개혁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소유분산은 언론개혁의 시발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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